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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7. (금)

술과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성명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지난 봄 알콜도수 30도 초과 주류에 대해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이전에도 종종 거론됐지만 국회 차원에서 논의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고도주에 부담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의 배경은, 음주의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부담금 부과를 통해 술 소비를 감소시켜 음주 폐해를 감축하자는 것이 기본취지이다.

 

국회에서 제기된 부담금 부과방안은, 해당 과세대상 주류의 주세과표의 10%를 부담금으로 부과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를 통해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연간 360억원 정도 조성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부담금 부과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감자로 한동안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여러가지 굵직굵직한 정치뉴스가 뉴스 무대를 점령하면서 어느덧 이 문제는 잊혀진 옛 얘기가 된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져 안타깝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의 심각성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소상하게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음주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매우 크다는 점은 애주들가들조차 거듭된 언론보도 등을 통해 잘 이해하고 있다. 음주 폐해 축소를 목적으로 주세율 인상이나 부담금 부과를 통해 주류 가격을 인상하자는 데 대해서는 저항감을 보이지만 음주문제의 심각성은 잘 인식하고 있다.

 

필자는 술에 대해 형식에 관계없이 어떤 형태로든 세부담을 상향 조정해 주류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런 점에서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됐던 고도주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의 부과방안을 원칙적으로 지지한다. 다만 제기된 방안은 방법론상 몇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알콜도수의 구분은 외국과의 통상 마찰을 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즉각적인 무역 보복을 초래할 수 있다. 1997년말 미국․EU는 우리나라의 주세율 체계가 원천적으로 수입주류(증류주)를 차별하고 있다고 하여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이듬해 확정판결을 통해 우리나라가 패소했다. 모든 조세 차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WTO 판결 이행을 위해 1999년 미국․EU와 양자협상을 했다. 국산․수입을 불문하고 모든 증류주에 대해 주세는 물론이고 부가적으로 부과되는 어떠한 형태의 조세․부담금을 모두 포함해 동일한 세율을 부과하도록 규정을 고쳐 2000년부터 시행했다.

 

어떠한 세율 차등이나 세율을 이원화하려는 시도도 WTO 확정판결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돼 금지되고 있다. 만약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WTO 규약에 따라 별도의 통상협의 없이도 즉각적인 무역보복이 가능한 상태이다.

 

알콜도수 30도를 기준으로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에 대해 일부에서도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데, 실상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WTO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기 때문에 대외신인도 추락은 물론이고, 무역보복을 통해 즉각적으로 경제적 피해를 받을 수 있다. 가뜩이나 국내경기 여건이 좋지 않은 가운데 무역보복이라도 당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간다. 이런 점에서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은 국제협약 내용을 보다 심도있게 이해하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방법론상 잘못됐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음주 폐해는 알콜도수 30도 이상의 고도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알콜도수가 20도 내외인 소주는 거의 모든 애주가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그로 인한 음주 폐해도 만만치 않다. 이런 점에서 굳이 부담금의 부과대상을 알콜도수 30도를 기준으로 양분하자는 데 대해, 국제통상마찰 문제를 떠나서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으로 음주의 폐해를 걱정한다면 고도주에만 국한하지 말고 모든 주류에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인상의 주체는 부담금보다는 세금이 바람직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담금이든 세금이든 가격인상을 통해 부담이 늘고 수요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재정효율성 등의 측면에서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건강증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국민적 동의를 얻기가 용이하다. 그런데 부담금의 경우에는 일부만 건강보험 재정에 지원되고 나머지는 건강이라는 명분 아래 술과 관계없는 보건복지부의 여러 사업에 투입된다. 기금평가단의 평가 결과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부담금보다는 세금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부담금보다는 세금으로 세부담을 높이는 방안이 정석이다.

 

셋째, 술에 대한 세금의 인상수준은 높을수록 좋다. 음주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수조원∼20조원 정도에 이른다. 음주로 인한 피해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하느냐에 따라 비용추계 규모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최소한으로 잡아도 7∼8조원 이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 결과이다. 사회․경제적 비용이 이 정도라면 음주를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야 한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세율 인상폭이 상당히 커야 한다.

 

대폭적인 세율 인상이 물가 상승과 정치적 저항을 증대시킨다는 점이 우려된다. 그렇지만 음주 폐해를 줄이자는 입법취지를 생각한다면 시늉만하지 말고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개혁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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