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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7. (금)

조세피난처를 위한 변명 아닌 변명

안창남 <강남대 교수>

1. 박근혜 정부 들어서 세무조사의 타깃은 우선적으로 조세피난처와 거래한 기업에 집중될 것 같다. 국내거래에 대한 세무조사는 아무래도 실적을 거두는데 한계가 있고 조세저항도 심하며 정권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해외 조세피난처 이용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쉬울 뿐 아니라, 우선 세금 추징이 쉽고(나중에 실제 국고에 들어올지는 미지수이지만) 소시민이나 월급쟁이들의 공분(公憤)을 불러 일으키기에 아주 딱 좋아 정치적 흥행 소지도 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조세피난처를 이용했다거나 그곳에 재산을 쌓아뒀다고 해서 정말로 나쁜 행위를 한 것일까? 외환거래 자율화로 인해 법으로 조세피난처와 거래를 금지할 방법도 없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투자가 이뤄졌거나 회사를 만들어서 거래를 했다면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고 본다. (물론 가격을 조작해서 국내에는 이익을 적게 남겨두고 조세피난처에 이익을 많이 남겼다든지 아니면 국내의 돈이나 재산을 몰래 빼내서 조세피난처에 숨겨뒀다든지 하는 행위는 비난받아서 마땅하다.)

 

2.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주된 목적은 아래와 같을 것이다. 첫째, 위험절연(remote)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도마뱀 꼬리 자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산 앞바다 기름 유출사건처럼,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운송회사는 몇천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이를 다 물어주고 나면 회사가 파산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을 만들어 그 회사의 배로 하여금 원유를 운송하게 한다.

 

만일 사고가 날 경우 해당 특수목적법인은 배상하다가 견디지 못하면 파산하지만, 원래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외국에 투자를 할 경우, 그 외국기업의 피해가 국내 모기업에게 미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만들어 운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과연 비난만 할 수 있을까.

 

3. 둘째, 경영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곳은 풍광이 좋고 교통이 발달한 지역이다. 한국처럼 전쟁의 공포도 없다. 그런 곳에는 대부분 금융회사만 즐비하다. 무엇보다도 돈을 빌리기 쉽다. 돈 거래에 대한 제한도 적다.

 

금융실명법이나 부동산실명법도 없다. 더군다나 상속세나 증여세도 그리고 종합부동산세도 없다. 재판 절차도 간편하고 무엇보다도 회사를 설립하는데 돈이 적게 들고 해산과 청산을 하는데 간편하다. 하루 이틀 동안에도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나 도관회사(conduit company)를 몇개씩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4. 셋째, 절세나 조세회피(또는 탈세 포함)를 쉽게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금을 덥석 덥석 내는 기업이 어디 그리 흔한가. 가급적 줄이려고 한다. 조세피난처는 세금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10% 남짓하다. 그래서 조세피난처를 우회해 투자를 할 경우, 해당 제도를 잘만 이용하면, 그렇지 아니한 경우(직접 투자)에 비해 약 60% 정도 세금부담이 낮다.

 

론스타의 경우가 적절한 예이다. 복잡한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볼 때, <미국 → 한국>에 직접 투자를 하는 것보다 <미국 → 벨기에 →한국>으로 간접 투자하는 경우, <미국과 벨기에>의 법인세 세율차이 및 <한국과 미국, 미국과 벨기에, 또는 한국과 벨기에> 사이에 체결된 조세조약상 차이의 이점까지를 덤으로 이용할 수 있다.

 

5. 변명의 구실을 하나 더 찾자면, 한국정부도 기업이 페이퍼 컴퍼니나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이나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을 보면 특수목적법인(페이퍼 컴퍼니나 도관회사 등)을 만들어서 위험을 분산하라고 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전 정부에서 한참 논의됐던 ‘이슬람 수크크법’ 초안에 따르면, 이 자금을 도입하고 싶은 국내회사는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자금을 조달해 국내에서 운용하도록 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비난을 받는 것은 억울할 것이다. (물론 국내에 들어와야 될 돈이 그곳에 이유없이 머물러 있다면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다)

 

6. 현 정부가 애쓰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창조경제’라고 한다. 정부 스스로도 이게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를 뚜렷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핵심은 규제를 철폐해 돈을 모으고 기업을 잘 운영하게 하여 고용을 창출하자는 것이라고 본다. 하여, 우리나라 일부 지역(예를 들면 제주도 일부 구역)에 조세피난처를 만들어서 외국 자본을 오게 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론스타가 벨기에를 우회하지 말고 차라리 한국의 제주도를 경유해 투자할 여건을 만들었다면, 이토록 소란스럽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에이, 어떻게 조세피난처를 우리가 만들 수 있는가. 그러나 조세피난처의 대부분은 미국이나 영국의 영향력에 있는 지역이다. 런던이 그렇고 델라웨어가 그렇다. 우리는 왜 그리 못하나. 그럴 배짱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OECD의 눈치 때문인가. 유럽을 보면 대부분 조세피난처를 한두곳 갖고 있다. 돈이란 속성상 그런 곳을 좋아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조세피난처 이용을 금지할 명분도 방법도 없다. 조세피난처에 대한 시각이 너무 경직된 것 같아서 해본 소리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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