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를 놓고 국책연구기관과 시민단체가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연구원(원장·조원동)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고유가로 인한 고통의 본질은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며 유류세 인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성명재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3일 발간된 재정포럼 '에너지세제의 현황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고유가 현상은 선진국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우리보다 고유가에 따른 고통을 훨씬 덜 느끼는 이유는 에너지 소비구조가 슬림하기 때문"이고 지적했다.
이어 "고통 완화를 위해 유류세를 인하해 가격을 낮춘다면 당장은 편해질지 모르지만, 필연적으로 비만증은 더욱 심화돼 유류세 인하와 비만증 심화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라며 "오히려 고세율·고가격 정책을 통해 소비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이 근본적인 치유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가연동장치가 배제돼 있는 현행의 에너지 관련 소비세 과세체계를 종량세 과세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수송용 연료유에 집중된 과세체계도 과세의 실효성과 범위를 확대해 에너지원간 상대가격 격차가 비정상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소비자단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유류세 인하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여전히 높고 정부 정책들의 실효성 논란 탓에 단기적으로 국내 유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유류세 인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 3일 "2010년말 현재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구매력평가지수(PPP)를 감안한 무연 휘발유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무려 2.4배나 높다"며 "달러화 1단위(1USD)로 구매할 수 있는 특정 재화나 용역을 나타내는 PPP로 환산해볼 때, 우리나라의 휘발유 값과 유류세는 소득수준과 돈 가치에 비춰 가혹하리만치 높다"고 지적했다.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10년말 현재 PPP를 감안한 우리나라 무연휘발유 값 수준은 미국(0.735 USD)의 2.8배, 호주(0.827 USD)의 2.5배, 일본(1.193 USD)의 1.7배, OECD 평균(0.878 USD)보다 2.4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연맹은 "정부가 우리나라 유류세 비중이 OECD 평균보다 낮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절대 다수 국민들의 유류세 인하 요구에 맞서고 있는데, 이는 정말 기만적인 처사"라며 유류세 인하를 주문했다.
한국주유소협회도 최근 성명서를 내고 정부의 유류세 인하를 강력히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는 "최근 고유가 원인은 기름값의 46%에 달하는 유류세 때문"이라며 "진정한 고유가 대책은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유류세 인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협회에 따르면 현재 유류세를 40% 인하하면 리터당 200~300원의 유가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소비자시민모임도 정부에 유류세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소시모는 "유류세를 낮추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50원 넘게 떨어진다. 탄력세 제한폭인 -30%까지 내리면 최대 300원 가까이 싸질 수도 있다"며 "유류세 가운데 현재 11.37%가 부과되는 탄력세 부분을 -11.37%로 인하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