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5일 새벽 0시를 기해 한국과 미국간 자유무역협정(FTA)가 발효됐다. 아직까지 국론이 모아지지 아니하고 여전히 재협상 내지는 협정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필자는 한·미 FTA는 우리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정책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산업부문에 따라 이득과 손해가 엇갈리는 사안이므로 치밀한 준비를 통해 사회적인 비용 최소화, 효용 극대화를 기해야 한다.
이번 한·미 FTA의 발효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경제의 거대 경제권 두 곳과 모두 FTA를 체결한 아시아 최초의 국가가 됐다. 전세계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영토가 넓어지게 된 것이다. 미국과의 FTA는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가 무역강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도약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개발연대 이후 우리 경제의 기본 운영은 정부 주도에 의한 대외 의존적 고속성장으로 대표된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는 대기업 집단의 대규모 투자와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의해 국가 전체 경기순환의 기본적인 흐름이 결정돼 왔다. 무역과 외국인 직접 투자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 있어서 성장의 주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시장 개방에 대한 옹호론은 확고한 이론적·실증적 근거에 토대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개인 및 기업들이 특화를 해서 교역을 할 경우 국가는 이들의 비교우위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는 자국의 자원(인적 자원 포함)들을 최대한 최적으로 사용하게 할 것인 바, 이는 기업 및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 또다른 하나는 보다 많은 선택의 자유에 대한 강한 요구이다. 보다 개방된 국내 시장은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력을 길러주는 힘의 원천이다. 국제 무역에 대한 노출은 효율성에 대한 강한 자극으로 이를 통해 경제성장 및 소득 증가가 가능해진다.
취약산업 및 노동시장에서의 부정적인 효과는 기술 및 기업조직의 변화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보호주의에 의존하는 경우 변화를 지체시키고, 비용을 증가시키며,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므로 더욱 심한 장기적인 곤경을 초래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제보다도 작금의 한·미 FTA에서의 쟁점은 국가 주권과 관련이 돼 있다. 한·미 FTA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 농업 등 취약산업 기반 붕괴 가능성과 함께 논란의 핵심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 등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무역 및 투자에 관한 양자 내지는 다자간의 규범이 국가 규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의 역량을 잠식할 수 있는 문제다. 무역 및 투자협정 규정들은 각국이 투명하고 임의적이 아니며 비차별적인 방법으로 다른 나라의 재화, 서비스 및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 규정을 마련해 집행하고 운영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ISD는 이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야권에서는 FTA 재협상론과 폐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총선과 대선 이후 야권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면 한·미 FTA는 출범 1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이같은 FTA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논란의 핵심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재협상이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정부는 FTA 협정 발효후 90일 이내 구성되는 서비스 투자위원회를 가동해 ISD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한다. 이 위원회에서 ISD의 수정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한·미 공동위원회에 결과를 보고하고 수정된 내용대로 두 나라가 이행하면 된다. 정부는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의사결정 구조를 단심제를 재심제로 바꾸거나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절차적인 문제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개방화가 유발시키는 고통은 즉각적인 반면 개방화의 혜택은 장기간에 걸쳐 보다 광범위한 형태로 경제 전반에 실현되는 경향 때문에 비판을 받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리더십의 발휘를 통해 다시 한번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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