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조건 시장을 줄이고 정부를 키우는 것이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다. 정부의 시장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라는 주장은 더욱 아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들을 몇가지 생각해 본다.
우선 정보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정부는 나름대로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고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배추값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결정할 수 있는 단순한 정보에 있어서도 정부는 시장을 따라가지 못한다. 경제를 제대로 운용하자면 수요와 공급에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고 그 정보를 제대로 적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거대한 정부를 만들어도 그러한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는 기본적으로 이 정보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다음 모든 경제 주체들이 정직하게 합리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정부에게는 매우 부족하다. 사회주의체제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독재체제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 강한 독재와 무시무시한 형벌로써 사람들에게 명령을 했지만 유연한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시장경제체제를 따라올 수 없었다. 경제는 명령으로 운용할 수 없다. 명령경제체제로 가까이 가는 것을 경제 민주화라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에 더 가까운 것은 소비자의 주권이 경제동력의 원천이 되는 시장경제체제이다.
세번째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가 완전히 정의로운 존재일 수 없다는데 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복지사회는 시장에 의한 분배를 정부가 개입해서 크게 수정함으로써 보다 '정의로운' 분배가 이뤄지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수사나 명분이 있고 복지서비스 제공의 내용이나 방법도 매우 다양하지만 그 궁극적인 수렴점은 시장보다 정의로운 분배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사회주의체제가 많은 비효율과 억압이나 통제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손익계산서에는 '분배정의'라는 항목이 워낙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선 시장에 의한 분배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을 시장에 의한 분배는 완전히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오해하는 것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각자가 스스로 수고한 대로 보상을 받는 것은 분배정의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며 이것을 가장 충실하게 실현해 주는 체제는 시장경제체제 뿐이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이러한 시장 분배가 너무 격차가 클 경우 시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든지 현실의 시장시스템 속에 정의롭지 못한 부분이 있어 분배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든지 혹은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경쟁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재분배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정부가 얼마나 정의롭게 이 일을 수행하는가에 있다. 우리는 북한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예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권한이 집중돼 절대화되고 그것이 오래 지속되면 불가피하게 부패가 나타난다. 복지국가에서도 정의롭지 못한 집행이 자주 문제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만들어지는 제도들이 그 안에 스스로의 모순이나 불공평의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복지지출 비중을 서둘러 확대하는 것보다 정교하고 조화로운 그리고 정말로 공정한 지출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여야 의원들의 경쟁적이고 성급하고 책임감이 부족해 보이는 복지 혹은 경제규제 관련 입법 발의가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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