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구리왕' 차용규(56)씨에 대해 역외(域外)탈세혐의로 1천600억원대의 세금을 부과하려던 계획이 무위로 돌아갈 전망이다.
4일 세무사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차씨가 "국세청이 역외탈세 세무조사에 따라 약 1천600억 원의 세금을 부과하려는 것은 부당하다"며 청구한 과세전적부심사에서 차씨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는 "국내 거주일수(1년에 약 1개월) 등을 감안할 때 차씨를 국내 거주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과세가 적절하지 않다고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득세법상에는 국내 거주자를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년 이상 거소를 둔 개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국외에 거주해도 가족이나 재산이 있는 등 생활 근거가 있으면 거주자로 간주한다고 돼 있다.
차씨의 주장이 과세적부심사에서 받아들여짐에 따라 국세청은 차씨를 상대로 새로운 과세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세금을 매기기 어렵게 됐다.
과세전적부심사는 세금 고지 전 국세청 조치에 이의가 있는 납세자가 요청하는 '불복 절차'로, 심사위원회에서 납세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과세당국은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세제 전문가들은 "역외탈세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구체적인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세금을 추징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차 씨가 카자흐스탄의 최대 구리 채광·제련업체 카자흐무스 지분 매각으로 얻은 1조원대 소득에 대한 역외탈세 혐의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국내 부동산 투자 탈세 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이후 차 씨의 실제 소유 지분 등을 감안해 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액수가 3천400억∼4천억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이 부분에 대해 세금 1천600억원을 추징키로 했었다.
차씨에게 과세하려던 계획이 무산돼 국세청의 역외탈세 단속 강화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세청이 4천100억원대의 사상 최대의 세금을 부과한 선박왕 권혁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권 회장은 국세청 조치에 불복해 현재 법정 공방에 돌입한 상황이다.
역외탈세자의 자산 대부분이 해외법인 명의로 돼 있는 상황에서 세금 추징도 쉽지 않다.
지난해 6월 국세청이 권 회장의 해외계좌를 동결했으나 권 회장의 계좌가 있는 홍콩의 법원이 이를 거부해 타격을 입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세청 관계자는 그러나 "차씨의 과세적부심 결과에 상관없이 역외탈세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계획은 변함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