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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6. (목)

공정한 사회와 조세정책

안종석(한국조세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

 '공정한 사회'가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다. '공정'이라는 말이 엄밀하게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주 좁게 부패에만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공정'이란 '공평하고 올바름'을 의미하고 '공평'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말한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한 것은 기회의 균등과 결과에 대한 책임, 그리고 패자 부활의 가능성으로 요약된다. 기회가 균등한 상태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경쟁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회란 사전적 의미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여기에 패자 부활의 기회까지 더한 것인데,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 특히 조세정책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에서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수평적 형평성(Horizontal equity)과 수직적 형평성(Vertical equity)이 그것이다. 수평적 형평성은 소득이나 기타 경제적 지위가 동등한 사람에게는 동등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수직적 형평성은 소득이 많은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납부하도록 하여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을 말한다. 수평적 형평성은 다른 말로 공평(fairness)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며,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기회가 균등의 균등, 공정한 경쟁, 결과에 대한 책임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조세개혁안에 대한 설명을 보면 거의 대부분 수평적 형평성과 수직적 형평성을 고려해 개혁안을 마련했음을 직·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조세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언제나 '공정한 사회'가 주요 관심사가 됐으며,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는 방향으로 개편안을 마련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공정'이라는 용어에 수평적 형평성과 수직적 형평성이라는,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두 개의 다른 개념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경제·사회·정치 환경에 따라 그 중 어느 하나가 더 강조되고 다른 하나는 덜 강조되곤 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의 예를 보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수직적 형평성이 많이 강조됐으며,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수평적 형평성이 많이 강조됐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서민을 위한 정책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수직적 형평성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됐음을 느낄 수 있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나타난 공정한 사회의 개념을 조세정책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수평적 형평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으며, 이에 더해 수직적 형평성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세정책도 두 가지 형평성 기준에서 평가해 보고 향후 발전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조세회피나 탈세를 통해 세금을 적게 납부하는 것이나 부과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체납하는 것은 수평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이다. 또한 과도한 비과세·감면을 통해서 특정 계층·집단에게만 특혜를 부여하는 것도 수평적 형평성의 개념에서 볼 때 문제가 있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정책은 수평적 형평성에 기반을 둔 정책이다. 수직적 형평성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서구 선진국의 조세정책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국가들이 고도의 누진세율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조세가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세가 소득재분배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소득세의 누진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세제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직적 형평성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며 사회적 중요성은 더해가고 있다는 점을 조세정책 수립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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