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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6. (목)

경제위기와 재정의 역할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뒤이은 심각한 불황사태에 대해 선제적이고 과감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선진국들이 취한 파격적인 대응조치들이 기대만큼 신통한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번의 사태가 매우 비상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된다. 주문하고 있는 과감한 대응의 내용으로 재정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10년전에 겪었던 환란의 극복과정에서 이미 재정수단의 유효성이 입증된 바 있다. 또 파격적인 금리 인하 등 금융조치들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너무 냉담하다 보니 이제 강력한 재정수단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전형적인 재정수단은 감세와 지출확대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같은 유형이라도 그 효과나 부작용 등이 매우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지출확대와 감세의 일반적인 특성을 생각해 보고 어느 쪽에 역점을 둬야 할지를 생각하는 전략적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초보적인 경제학 교과서에 보면 경기대책으로서 지출 확대가 감세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고 돼 있다. 이른바 승수가 더 크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출이 대부분의 복지지출을 포함하는 이전지출이 아니고 정부 소비나 정부투자의 성격을 갖는 것일 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출확대정책이 갖고 있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들은 그런 교과서들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첫째로 긴급하게 나타나는 위기상황에서 재정지출을 신속하게 늘리는 것 자체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부시차가 길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정예산의 편성이나 추경예산의 편성과 심의 결정 등이 절차상 또는 정치적 이유 등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강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 지를 결정하는 것인데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선반에 얹어뒀던 사업계획이 있으면 모를까 갑자기 막대한 금액을 유효하게 집행할 수 있는 사업을 선정해서 그것을 시행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 예산의 조기집행이라는 '수단'을 자주 사용했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이미 확정된 예산사업의 집행을 몇개월 앞당기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은 대체로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조기집행이 잘 시행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자칫하면 막대한 재정이 적기에 경기활성화 효과를 거두기는 커녕 황당한 낭비와 함께 타이밍 오류로 인한 경기 교란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지출 확대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일단 지출이 늘어나면 나중에 그것을 되돌리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규모 팽창은 지출 확대가 불가피했던 시기마다 지출 확대사유가 해소된 뒤에 지출규모를 제자리로 돌리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전통적 이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930년대의 공황에 대응해서 만들어졌던 TVA는 2차대전후 경기가 장기간 호황을 보이고 있던 기간은 물론 월남전으로 미국 경제가 과열돼 있던 1960년대 중반에도 계속해서 테네시계곡 일대에서 댐을 막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반면 감세는 재원의 처분을 민간에 맡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세는 매우 신속하게 결정·시행할 수 있고 그러한 조치로 말미암아 생성된 재원의 집행은 민간부분에 의해서  분권적인 형태로, 따라서 매우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감세의 또 하나의 중요한 매력은 감세과정에서 조세구조의 합리화 또는 효율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왕에 여러가지 이유로 감세 또는 조정을 하기로 계획했거나 그러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던 세목들이 있다면 경제위기를 감안해서 이러한 조치의 강도와 시기를 조절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된다.

 

지금은 재정건전성의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해도 결국 위기가 지나가면 이 문제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지금의 대응방향에 따라 그 때 우리가 직면하게 될 재정건전성 문제의 크기와 질이 매우 달라질 것이다.

 

재정의 확대를 완전히 막자는 주장은 아니다. 우리 경제가 깊은 불황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재정의 확대보다는 감세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생각이다. 감세 중에도 법인세율의 인하를 더욱 과감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결국 투자의 확대를 통한 일자리 확대와 세수 증대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는 앞으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더 크게 의존하게 될 중심 세목이다. 우리 모두가 걱정하는 분배 개선과 복지 확충은 법인세 같은 비효율적인 조세의 비중을 줄이고 효율적인 부가가치세의 역할을 확대하는 조세구조의 합리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케인지안적인 경기수단만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모든 역량이 동원되고 결집돼야 한다. 비효율적인 제도와 정책 관행 등이 과감하게 청산돼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법과 질서가 엄정하게 세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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