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년8월16일부터 며칠동안 북한 모기관의 초청에 의해 평양과 지방 몇곳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5년전에도 비슷한 경로를 통해서 다녀왔는데, 5년만에 다시 보는 평양은 많이 나아져 있었다. 전력 사정도 그런대로 좋아졌고 길거리에 자동차가 제법 많이 다니고 있고 평양주민들의 옷과 차리고 사는 모습이 나아보였다. 특히 거리의 색깔도 많이 다양해진 것은 북한의 변화조짐으로 봐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남한의 자동차 색깔이 검은색에서 파란색 등으로 변화되었던 때가 남한의 다양한 욕구를 차에 반영한 것이었으며, 최근 러시아의 석유달러 유입으로 인한 상대적인 여유와 자유스러움이 길거리 색의 변화로 나타나기 시작했었던 점을 생각하면, 북한 길거리의 색의 변화는 유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곳 주민에게 요즘 사는 형편을 물어봤더니 "고난의 행군시절('96년 식량 부족으로 수백만의 주민이 죽었던 기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긴장(어려운)해야 될 부문이 좀 있는데 그 중에서 식량이 제일 걱정입니다"라고 걱정스레 말한다. 아직도 상당히 어렵다는 뜻이지만, 북한의 변화속도는 중국의 개방시 변화속도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2. 북한을 어떻게 봐야(또는 다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 어렵고 그리고 내 전공도 아니다. 다만 남한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정도만 언급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남한에서 북한을 보는 시각은 크게 두가지다. 껴안고 갈 것인가 아니면 타도(정복)의 대상인가. 좋은 예가 '평양과학기술대학'이다. 이 대학은 남한의 여러 단체가 협력해 준비했고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걸림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남한에서 평양과학기술대학을 보는 '시각의 차'가 바로 그것이다. 그 하나는 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좋으나 북한이 그곳을 통해서 과학발전을 이루고 그 결과로 무기를 만들어서 남한으로 그것을 사용하면 곤란하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럴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분야이니 투자를 해서 북한 수준을 남한의 일정수준까지 따라오게 하는 것이 '사람이 할 짓' 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 연장선 상에서 살펴보면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퍼주는 것'도 가능하다는 주장과 지금까지 그리 퍼줬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 등 뒤에다 총이나 쏘고 핵이나 개발하였으니 이제 '국물'도 없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 일리가 있는 주장 같지만 차이는 '북한 사람'을 보느냐 아니면 '북한 체제'를 보느냐의 차이이다.
3. 이곳에 와서 보니 북한 살림살이가 좀 나아진 것은 중국으로부터 돈이 좀 들어온 모양이다. 북한이 경제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중국과 협정을 체결해 무산의 철광 채취권, 남포 앞바다의 석유탐사권 등 여러가지 자원개발권을 중국에 넘기고 몇푼 돈이 들어온 것도 그 원인 중의 하나라고 같이 방북한 경제학자의 진단이다. 이는 조선말기의 운산 금광, 경원과 종성의 사금광 채굴권, 압록강과 울릉도의 삼림 채굴권 등을 팔아넘긴 것과 유사하다. 북한도 생각이 있는 집단이라면 그러면 안된다. 이왕 넘길 것이라면 남한 기업에 넘겨야 통일이 돼도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통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통일된 뒤에도 통일한국은 북한이 이미 체결한 중국과의 협정을 지켜야 하나? 장차 통일을 해도 땅은 차지했지만 빈털터리인 북한만 접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든다. 통일 독일은 동독이 다른 국가와 체결한 조약을 그대로 준수한다고 선언하였다. 한 국가 또는 정부가 체결한 조약이나 협정이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불만이 그리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서명한 쇠고기 협정을 '개정'하지 않고 겨우 '추가 협상'을 통해서 국민의 뜻을 반영했을까. 조약이나 협정의 파기는 파산선고 또는 전쟁 수준의 긴장을 요하는 것이다. 통일한국이 북한과 중국과 체결된 조약을 안 지킨다고 한다면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4. 진정 통일을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우리네 사정이 어렵지만 그래도 준비를 해야 한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다. 시골 가난한 농부들도 자식들을 위해서 소도 팔고 논도 팔아서 자식들 교육시킨 덕분에 우리가 이처럼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당장 어렵다고 해서 교육을 포기했더라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겨우 국민소득이 5천불 왔다갔다 하는 일본의 하청공장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800조원 정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20년 동안 매년 적게는 30조원에서 많게는 40조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국세로 징수하는 세금이 160조원 정도이므로, 현재보다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 25% 정도 늘어나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방법으로는 통일세 신설방안, 국공채 발행 방안, 해외자본 유치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세계잉여금이란 정부가 세입예산 중 쓰고 남은 세출 불용액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산회계법에 따라 정부의 모든 지출은 예산에 반영돼야 하지만, 세계잉여금은 국채의 원리금상환이나 정부의 채무 변제에 국회의 동의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세계잉여금을 통일비용을 적립하는 경우, 별도의 조세의 신설이나 부담률의 증가 없이 통일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07년도의 경우 총 발생 세계잉여금은 7조원 상당에 이른다. 물론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 재원이 소중하게 사용이 돼야 하지만 통일을 위한 준비금으로 사용될 수는 없는가?
5.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으면서 내 옆에 있는 북한 당국자에게 물어본다. "지금 정치적으로 남북관계는 상당기간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민간단체의 교류를 확대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남한의 교회나 절이나 성당에서 북한의 한 동네나 학교를 1 대 1로 지원할 터이니, 선정을 해달라. 그러나 분배의 투명성은 보장해 달라" 동독과 서독의 경우도 그러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이렇다. "안 선생의 뜻은 잘 안다. 그러나 안 선생의 제안은 현재로선 어렵다. 만일 한 동네를 추천해 주면 그 동네는 남한의 지원으로 잘 살 것이다. 그러나 그 옆동네는 어떻게 하느냐? 북한체제상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것이 목표이므로 따라서 남한 지원품을 모두 거둬서 똑같이 나누는 것이 북한 체제이다" 내 질문이다. "아니 그러면 남쪽에서 지원해 준 물건이 우선적으로 공산당원들이 다 차지한다는 비난이 있을텐데?" 그쪽 대답은 "남쪽의 비난을 잘 알고 있지만 북쪽 체제상 그래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 먹었던 평양냉면이 목에 꽉 걸리는 순간이다. 사람보다 체제 유지가 급한 그들이 한없이 불쌍해 보였다. 이즘(ism)에 붙들린 북한이 언제나 해방되는가?
6. 역사의 주인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바로 우리 가난한 부모들의 논을 팔아서 시킨 자식공부가 그러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가혹한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해방을 얻기 위해서는 때를 기다리며 부지런히 실력을 쌓자고 하는 '무실역행(務實力行)' 정신이 그러했으며 오늘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억압에서 시달릴 때 요엘 선지자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하는 날카로운 외침이 오늘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을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 일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근대역사상 우리나라의 큰 문제는 일본 억제로부터의 '해방'과 6·25 전쟁이후에는 '민주화'이고 그리고 현재는 '통일'이라는데 대부분의 학자의 공통된 생각이다. 앞의 두 가지는 해결됐다. 그런데 그 혜택은 반대세력에게 더 많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들은 해방이후에도 계속 잘 살고 있는 반면 독립에 헌신했던 사람이 잘 산다는 소식은 듣기 매우 어렵다. 민주화에 무관심하거나 거부감이 있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다. 통일도 그러할 것이다. 통일을 반대한 사람은 통일 이후에는 북쪽에 부동산관련 '투자'를 많이 해서 돈을 벌 것이고, 정작 통일을 위해 혼신을 기울인 사람들에게는 겨우 상장 몇 장 정도일 것이다. 그게 세상 일이다. 사족이지만 그래서 부처님,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서 '그런 방법'으로 잘 살았다면 그 분들이 계시는 그 곳에서는 그렇게 세상에서 잘 살고 온 사람들을 좀 '다르게' 대접을 하지 않을까.
7. 북한을 어떤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이지만 결국 북한 사람(인간)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체제는 지나가게 되어있다. 김정일의 나이가 65세 정도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용'을 써도 길어야 10년이면 '끝날 것' 아닌가. 그들의 무력책동에 우리가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북한 학생이나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아이들도 나중엔 통일한국의 구성원이 되고 '주체사상'에 몰입된 청소년들도 나중엔 투표권이 있는 통일한국의 성년이 될 것이다. 통일이 되고 난 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의 치료비용과 '오염된 사상'으로부터 치료하는 재교육비용이 오히려 경제관점에서 본 통일비용 못지않게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 것이다. 이들에 대한 남한의 관심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내년에 쓸 종자는 먹지 않는 법이다. 그래야 미래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평양 대동강 물과 묘향산의 공기가 한없이 측은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