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일간지 기자로부터 금년도 정기 국회에 계류된 세법 개정안이 100건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도 세제 개편안을 상정했지만, 정부는 각종 세목의 개편안을 종합해 포괄적인 개편안으로 국회에 상정했으므로 대부분의 개편안은 의원 입법안이다. 

3권 분립체제 하에서는 국회가 유일한 입법기관이므로 모든 법률을 의원이 발의해 입법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전문화·분업화되고 자본주의가 고도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가지 사회문제에 신속·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입법조치가 필요하게 됐다. 정부가 실제 행정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해결돼야 할 여러 문제에 당면해 법률의 제정·개정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또한 전문지식을 확보하고 있으며, 입법자료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 세계 각국은 정부에게도 법률발안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과 같이 헌법상 정부의 법률발안권이 인정되지 않는 국가에서도 여당 의원이 정부안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안하고 있으며, 실제로 국회에서 제정되는 법률의 대부분은 정부가 제안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법률안을 발안할 수 있고 실제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정부가 직접 발안하므로 대부분의 의원 입법안은 의원 개인의 발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의원 개인 차원에서의 법률안 발안은 지방이익이나 특정업자 보호를 위한 법률안 또는 소수파가 많은 혁신정당의 특정계급의 보호를 위한 법률안 등이 많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조세정책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행정을 하는 행정부와는 달리 특정지역 주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은 다른 지역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역구 이익을 보장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음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각의 의원들이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 자신을 지지해 준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의정활동을 충실히 하게 되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조세정책이 국가경제의 관점에서 본 장기적 발전방향과 다를 수 있다. 특히 공평성의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조세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는 데 있다. 재원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세금을 더 많이 징수하기도 하고， 재원이 남는 경우에는 세율인하 등을 통해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기도 한다. 국가 경영에 필요한 재원의 규모가 주어졌을 때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세부담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세는 자금을 민간에서 정부 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경우에도 제로섬이 되며, 어느 한 쪽이 세금을 적게 내면 필연적으로 더 많이 부담하는 부류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특정한 집단의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집단이 희생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안다면 특정 집단 또는 특정지역 주민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법률안에 동료 의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세정책의 경우 특정 집단에 대한 세부담을 인하하는 방안만 봐서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다른 집단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원 입법안을 서로 교환해 지지함으로써 서로 다른 법안을 제시한 의원들이 상호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특정 지역에만 이익이 되고 다른 지역에는 불이익을 초래하는 성격의 법률안이 상정되기도 하고,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 입법이 성사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원 개인의 발안 및 수정 동의에 대해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조세정책의 경우 제한의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방법으로 세법 개정안을 발의할 때 국가경제적 관점에서 효과분석을 하여 첨부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각각의 법률안이 대상이 되는 특정 집단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다른 국민들에게 미치는 장기적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정보를 제공한 후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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