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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02. (목)

내국세

납세정보 빨아들이는 '블랙홀 국세청'…빅브라더化 우려

성실납세 감시역할 앞세워 납세자 개인정보 수집영역 갈수록 넓혀

세무조사때 '금융조회 전산시스템' 가동…연말경 시중은행 대부분 참여

연소자 부동산 거래때 대출 등 부채내역 수집해 사후관리…탈세혐의와 무관

외국계기업, 조사 비협조시 서버 등 전산망 접속 자료확보 추진…마찰 우려

홍기용 납세자연합회장 "현행 신고납부제 취지 어긋나…납세자 주권 침해"

 

 

‘빅브라더’ 국세청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법에 따라 수집하는 과세자료 외에도 금융자료 등 납세자의 재산권과 관련된 수많은 개인정보를 확보하고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탄생한 빅브라더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권력 또는 사회체계를 일컫는다.

 

국세행정에 대입하면,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인 납세의무의 성실수행 여부를 감시하는 순기능을 들 수 있으나, 역기능으로는 납세자의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국민을 감시·통제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2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방국세청 조사요원들이 세무조사 때 활용하는 은행의 금융거래내역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도록 ‘금융조회 전산시스템’을 최근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 전산시스템은 세무조사팀이 은행으로부터 조사대상자와 관련인의 금융거래내역을 송·수신할 수 있는 것으로, 올해 안에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되면 조사요원들의 세무조사 금융조회 업무처리가 한층 빨라지게 된다.

 

세무조사 과정에서의 금융자료 뿐만 아니라 은행대출 등 개인의 부채내역으로까지 세원관리 폭이 넓어진다.

 

국세청은 다음 달부터 일정금액 이상 고가주택을 구입한 연소자들에게 채무내역을 제출받아 사후관리할 방침이다. 세무조사 단계가 아니라 세원관리 단계에서 은행대출 등 부채내역을 미리 제출받아 사후관리시스템에 입력한 후 실제 상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탈세 혐의가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채무내역을 제출받아 관리하겠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한층 강화되는 국세청의 세원정보 및 과세자료 확보 과정에서 납세자의 반발을 예상한 듯 대응방안 수립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다국적기업 등 외국계기업의 세무조사 방해, 세무조사 비협조 행태가 날로 심각해지자 국세청이 직접 해당기업의 서버 등 전산망에 접근해 납세정보를 획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달청 용역을 발주해 대응방안을 찾고 있는데, 골자는 기업의 조사 비협조 정도에 따라 납세자의 클라우드 서버, ERP 등 납세자의 전산망에 접근해 납세정보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신용카드⋅세금계산서⋅현금영수증 등 과세인프라, 과세자료 제출, FIU 통보 등 수많은 과세자료와 개인정보가 국세청 전산망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며 축적되는 정보량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법적 장치를 통한 자료나 정보 수집 외에도 앞서처럼 세무조사, 신고관리 단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급기야 국세청은 지난 2019년 빅데이터센터를 출범시켜 전산망에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가공해 신고관리 및 세무조사 때 활용하고 있다.

 

빅데이터센터 출범은 당장 부가가치세, 법인세, 소득세 신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세청은 신고기간 전에 미리 납세자들에게 신고도움자료를 제공하는데 이 신고도움자료에는 납세자들이 신고서에 반영해야 할 다양한 항목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만든 것이어서 납세자들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내용들이다.

 

실제로 12월말 결산법인을 대상으로 3월 한달 동안 법인세 신고·납부가 진행 중인 가운데, 국세청은 납세자가 자발적으로 성실신고할 수 있도록 신고도움자료를 최대한 제공하되, 신고 이후에는 신고도움자료 반영 여부를 정밀분석하는 신고내용확인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신고내용확인은 신고도움자료 반영 여부를 검토해 특정항목·유형에서 오류 또는 누락 혐의가 있는 법인을 적출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탈루금액이 큰 경우 바로 세무조사로 이어진다.

 

납세자에게 신고도움자료를 보내고 신고기간 종료 이후에는 도움자료 반영 여부를 확인해 반영수준이 일정 이하인 경우 신고내용확인 및 세무조사까지 나아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해마다 신고도움자료에 포함된 항목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그만큼 납세자들에게 강한 신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국세청 빅브라더화에 대해 세정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정가 한 인사는 “탈세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부동산 취득과 관련한 대출 등 채무내역을 내라고 하는 것은 과잉행정 아니냐”고 주장했다.

 

국세청 출신 한 세무사는 “국세청 재직 때 다국적기업을 조사한 경험이 있는데 해외 본사를 핑계 대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행태가 다반사였다”면서 “다국적기업의 조사 비협조에 대해 특별한 방안을 찾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해당기업의 서버 등 전산망 접근 방안은 외교 마찰 등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세무사는 “해당기업의 서버 등 전산망 접근을 하나의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그같은 발상이 놀랍다”고 덧붙였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장은 “세금신고 이전부터 납세자의 자산내역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은 현대의 조세 신고납부제도에 어긋나고, 납세자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또한 “정당한 조세행정이라면 신고 때까지 기다리고, 신고 이후 탈루혐의가 적출될 때 비로소 징벌적 가산세를 통해 조세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납세자의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자 하면 금융거래를 넘어 경제활동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신고납세제도 취지 또한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세청이 과세자료 수집에 더욱 집중할 뿐 자료의 외부개방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완일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최근 서울지방국세청과의 간담회에서 “국세청은 빅데이터 수집을 통해 많은 과세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정작 세무사에게 제공하고 있는 데이터는 여러 가지로 제한되고 있다”면서 “납세자의 신고편의를 위해 세무사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득, 부동산 등 재산과 관련한 모든 자료가 국세청에 집적되다 보니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파장이 큰 경우도 많다.

 

지난달 국세청이 운영 중인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에서 로그인 오류가 발생해 821명의 자료가 타인에 의해 무단 조회된 일이 발생했다. 시스템 로그인때 이용자 인적사항과 간편인증때 입력한 인적사항이 일치하지 않아도 로그인이 되는 게 문제였다.

 

세정가 다른 인사는 “개인정보 보안에 유독 예민한 국세청 전산망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정보의 수집과 분석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그 속에서 납세자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총 79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개인정보 관리수준 진단’ 결과, 국세청은 ‘보통’ 등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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