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6.12. (수)

스마트한 기업과 쿨한 정부

김유찬 홍익대 교수

기업은 다만 도구인가? 사악한 칼, 착한 세탁기처럼 선한 기업, 혹은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는 기업이란 무의미한 말인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는 일이 과연 경제·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긍정과 부정적 답변이 모두 가능하다고 본다. 우선 기업은 사람처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가능하다. 기업을 책임지는 경영자는 여타 종사자들과의 관계속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염두에 두고 행위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선한 기업, 혹은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는 기업은 현실에 다수 존재한다. 

 

기업의 주된 활동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사회에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과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런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이윤 동기에 충실해야만 가능하기에 결국 이윤 추구를 열심히 하는 것이 기업이 주력해야 하는 일이라는 주장도 충분하게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이익의 상당부분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거나 중소기업과 이익을 적절하게 나누는 행위는 기업의 경쟁력을 해칠 수도 있는 무책임한 행위이거나 최소한 부차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두 가지 시각을 비교해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기업 외부의 지역사회나 중소기업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부의 근로자들과의 관계, 고용에 대한 책임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역적으로 사회와 기업의 관계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다.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고 여러 경제제도의 형성과정이 다름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미국은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로 특징지어지고 이에 비교되는 시스템으로는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우세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주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이 주주에게 높은 배당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재무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영자가 높은 평가와 상응하는 보상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경영자는 스스로의 보상을 위해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게 되고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 유지보다는 M&A나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손쉬운 단기적 수익 창출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반면에 비교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좀더 의식하게 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기업의 의사 결정구조가 고용과 관련한 결정은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하에서만 가능하도록 제도화돼 있기에 성향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10여년, 그리고 21세기의 첫 수년간 주주자본주의적 기업관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간주됐다. 재벌체제를 개혁하고자 했던 한국의 학자들이나 운동가들도 이 주주자본주의적 사고에 기반해 운동을 전개했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본산 독일에서조차 금융위기 직전까지는 미국의 주주자본주의를 대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사회 분위기가 기울어졌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적 기업관이나 시장지상주의적 시각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현저하게 약해졌다. 그리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체제하의 기업의 경쟁력이 반드시 나쁘지 않다는 측면도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에도 지사가 있는 독일의 Carl Zeiss라는 회사는 이미 1800년대 말에 하루 8시간 근로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당시 유럽 기업들에서 평균 근로시간이 13시간일 때.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양 독일에 나눠져 있던 이 회사가 합쳐지며 직원을 해고한 적이 있었으나 그외에는 회사의 역사에서 개인의 중대한 실책이 있는 경우 이외에 직원을 해고해 본 일이 없다. 주로 B2B 사업에 종사하기에 일반 소비자에게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광학 및 제어계측분야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다.

 

모든 기업이 폭넓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때문에 온전하게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존속하는 기업이라면 사회적 책임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좋고 그런 기업이라도 이 나라에 많기만 하면 좋겠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충분하게 공감이 간다. 

 

이러한 스마트한 기업들에 대해 국가나 사회는 쿨하게 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지도 말고 동시에 국가 경영에서 기업에게 지나친 양보도 지양해야 한다. 이익 창출의 기회가 엿보이면, 그리고 이 경우에만, 투자하는 것이 (스마트한) 기업이므로 정부는 국가사회 내의 다른 시민들을 대하는 것처럼 기업을 대우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업에게 다른 시민 모두에게 요구하는 원칙인 응능과세원칙에 부합되도록 세금을 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시대 이후 아직까지도 정부의 일방적 사랑(저금리자금 배급, 환율 통제, 세제지원)을 통해 수십·수백배 성장한 기업에게서 3류로 치도곤 당하는 것은 쿨한 정부의 행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에게 과연 적절한 세금 부과가 이뤄지고 있는가? 기업의 적절한 세금 납부는 불법적인 탈세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행 세법 규정이 기업이나 대기업 소유자들에게 유리하게 규정돼 있다는 점이 지적돼야 한다. 법인세는 법인의 소득을 법인단계에서 과세하는 것이므로 개인에게 배당될 때 소득과세에서 공제가 되지 않으면 이중과세의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제를 해준다면 이중과세의 의미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원천징수의 의미만 갖게 된다. 법인단계의 과세가 없으면 기업은 배당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영원히 과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R&D 세액공제나 고용투자세액공제제도를 차치하더라도 우리사회에서 법인세율 22%와 소득세 최고세율 38%의 격차는 매우 큰 것이기에 기업을 지배하는 대주주는 법인세를 부담하고 남은 이익을 지속적으로 기업에 유보시켜서 세부담을 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대주주들은 다른 시민들에 비해 가볍게 과세되고 세부담의 수직적 공평성은 심하게 훼손된다.  

 

스마트한 기업과 쿨한 정부: 정부는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지 않고 기업은 국가공동체 유지를 위한 재정 조달에 적절한 자기 몫만큼을 기여하면 된다. 기업과 사회는 공정하면서 현실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득세 최고세율과 법인세율의 격차를 10% 이내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