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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세

(16)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명환 著(前행정자치부 서기관)

2014416'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대통령이 '관피아'라는 용어까지 언급하며 '공직자 개혁'을 천명했다. 급기야 5월19일엔 눈물을 보이며 직접사과까지 했다. 

 

1999. 당시 행정자치부 허명환 서기관이 쓴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라는 책을 발간했던 한국세정신문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생성된 작금의 현상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과 함께 감회가 새롭다.

 

어느 정권이든 '공직개혁'을 시도 하지 않은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형참사 앞에 또다시 '공직개혁'을 운위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책이 나온 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라는 '촌철살인'을 그동안 우리는 왜 뼈 아프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기(放棄)했던가.

 

공무원은 근본적으로 똑똑하고 유능하다. 그런데 그 유능한 공무원 중 극히 일부만이라도 국민이 맡겨 준 의무를 성실히 이행 하지 않거나 부정한 곳으로 눈을 돌릴 경우, 그 폐해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이 번 '세월호 참사'에서 똑똑히 보았다.

 

부처를 통폐합하고, 기관명칭을 바꾸거나, 기구를 새로 만든다고 해서 공직개혁이 다 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공직DNA가 바뀌지 않는한 또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이 메시지 속에 '바람직한 공직DNA는 무엇이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녹아있다. 공직개혁을 격려하고 성공을 바라는 의미에서 본서를 연재한다.  

 

*2014년 5월19일부터 3(--) 연재될 예정입니다. 집필당시의 용어-배경 등이 현재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바랍니다.

 

<편집자 주>

 

 

-산꼭대기에서 생긴 일-
신속ㆍ편리한 민간위탁 행정 서비스

 

타호 호수(Lake Tahoe)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주와 네바다(Nevada)주의 경계선상인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산맥에 있는 달걀 모양의 호수인데, 이게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노래에서나 나오는 그런 조그마한 호수가 아니다.

 

얼마나 큰가 하면, 둘레 115Km(72마일)에 넓이만 500㎢ (122,000에이크)이고, 가장 깊은 곳은 서해보다 깊은 수심 500m 정도로 미국 전도에도 나타날 만큼 크다.

 

수량은 얼마나 많은가 하면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이 호수물로 수장시킨다면 36cm(14인치) 높이로 잠기게 할 수 있는 양인데, 놀랍게도 이렇게 큰 호수가 해발 1900m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 있는 끝내주는 절경과 맑고 풍부한 물 그리고 주변의 스키장. 골프장 등으로 인해 사계절 인기 있는 미국에서 대표적 인 휴양지 중 하나이다.

 

6월이라 반바지 차림으로 에메랄드(emerald)만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더니 허연 눈이 푹푹 떨어지길래 화들짝 놀라 겨울 파카를 꺼내 입기도 했다.

 

호수의 북쪽 크리스탈(crystal)만에서 다시 차를 세우고 호수 남쪽을 바라보니 호수 절반 남쪽 지역은 완전히 운해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북쪽 반은 칼로 자른 듯 햇빛은 쨍쨍이고...... 자유의 나라라 그런지 기상 변화도 자유롭기 그지없는 듯하다.

 

그런데 맙소사! 기껏 한라산 백록담이나 통 키워 봤자 백두산 천지만 보아 오던 대한의 건아가 수평선이 보일만치 큰 호수가 1900m 높이의 산에 걸려 있는 걸 보자 정신이 헤까닥했는지 그만 열쇠를 둔 채 차문을 잠궈 버렸다!

 

Oh, boy! 이 산꼭두배기에서 무슨 수로 차문을 연담? 차도 내 차가 아닌 빌린 차(rent car)이기에 함부로 창틀을 쑤시다간 나중에 반납할 때 차량 손괴(vandalism)로 변상해 주어야 하기에 그러지도 못한다.

 

그러나 마침 이런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사전에 AAA(Triple A)라는 곳에 가입을 해 두었기에, 노숙하게 가까운 가게를 찾아 들어가 이곳에다 SOS 전화를 하였다.

 

AAA는 미국자동차협회 (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의 약자로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민간업체인데, 고객이 납부한 연회비에 따라 서비스 종류를 달리 제공한다.

 

비록 뉴욕주 시라큐스(Syracuse)에서 가입했다 하더라도 미국 전역에 걸쳐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에 3천마일 이상 떨어진 이곳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전화로 서비스를 신청하면 되고, 그것도1-800전화라 수신자 부담이다.

 

서비스 안내에 보면 이런 경우에는 30분 이내 서비스 차량이 출동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런 산꼭대기까지 어떻게 30분만에 오겠누, 오늘 여행 일정은 재조정 해야겠구먼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20여분이 지났을까? 웬 허름한 견인차가 삐까뻔쩍 경광등 불빛을 휘날리며 우리 근처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거, 우리 차다 ! 라고 느끼는 순간, 재빨리 손을 들어 신호를 하니 진짜 우리 차 옆에 씩씩하게 차를 세운다.

 

기름에 쩔은 전형적인 미국 자동차 정비공 모습의 사나이가 슈퍼맨처럼 쓰윽 내리더니, 간단한 철사줄을 들고는 몇 번 껄쩍껄쩍 하더니 차문을 열어 준다. 식전 해장감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구세주가 따로 있남, 이런 경우 이런 사람이 구세주지!

 

그러고는 사인을 해달란다. 사실, 뭐 이런 경우 몇 번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나도 유식한 척 대수롭잖게 영어 사인을 휘갈겨주곤, "Thank you very much"라 해준다. 그것으로 끝.

 

이 카우보이 같은 자동차 정비공은 다시 여행 잘하라 인사하고는 그 고물 견인차를 몰고 횡횡히 길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따로 수고비 달라고 깔짝깔짝 그러지도 않은 채 만약 달라고 했다면 진정 고마운 마음이라 흔쾌히 주었을 텐데도 말이다.

 

참으로 신속하고 정확하며 깔끔한 서비스였었다.

 

사실 그 친구는 AAA에 가맹한 전국의 수많은 자동차 정비업체 중의 하나로, AAA가 신고 접수를 받는 즉시 신고자의 위치와 가장 가까운 가맹점에 전화하여 현장에 달려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그런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같으면 워싱턴DC 쯤에 본사를 두고, 각 주마다 지사를 둔 후, 또 각 지역마다 지점 그리고 출장소 등을 두며 가장 말단 진짜 고객이 서비스를 받는 곳에는 뭐 소장 한명에 관리직 두어명, 여직원 하나 그리고 정비공 두셋 정도를 두고 이런 조직을 운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놓고는 외견상 매출액은 얼마 규모이고 총 종업원은 몇 만명 규모의 대규모 재벌기업이라며 정계와 관계로 폼 잡고 돌아다닐테고.

 

도대체 연회비 50여불 받아 그 넓은 미국 천지에 어떻게 그런 방대한 조직을 유지할 수 있으며, 어떻게 30분 이내 신속히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닫힌 차문 열어주는 서비스만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요즘 우리식의 구조조정을 적용한다면 말단 출장소 몇개 통폐합하고 지사나 지점의 인원을 몇% 줄이고 경상 경비 대폭 절감한다고 요란을 피울 터이지만, 그런다고 그런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을까?

 

직접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지역에 흔히 있는 정비업소를 가맹점으로 연결함으로써 유지 관리비를 줄이되 고객에게는 여전히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런 시스템이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게다. AAA는 이를 실증해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정부 기능을 줄인다 할 때 기구와 인력을 감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AAA경우처럼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관련 민간에게 위탁하여 제공하게 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 조직 유지 관리비에 대한 비용을 그만큼 줄이면서 동시에 보다 신속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원리라는 게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뚝! 굴러 떨어지는 그런 게 아니다. ‘하면 된다’혹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사고의 틀만 깬다면 훨씬 좋은 길이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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