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洛善·安武爀 청장때 직원들도 목에 힘들어가

'84.4월 어느 날. 서울지검 한 부장검사(형사부)를 방문한 국세청 간부 A씨는 부탁을 하러 온건지 '통보'를 하러 온건지를 분간 못할 정도로 부장검사를 향해 '청장의 뜻'을 전했다. 손이 발이 되게 빌어도 될까 말까 한 사건을 앞에 두고 피의자측에서 온 사람이 당담검사 앞에서 이렇게 꼿꼿하게 뜻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은 당시로서는 흔치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국세청에서 온 사람은 달랐던 것이다.
국세청의 한 서기관이 2년전 세무서장 재임 때의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검찰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문제가 직상급자까지 번질 수 있는 비교적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청장이 막후에서 힘을 썼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전하라'는 말 한마디에 이 사건은 '종료'됐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이밖에도 심심찮게 입에서 입으로 전문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국세청의 파워'가 문제해결의 핵심으로 회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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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막강한 힘을 가진 거대 권력집단이다. 그러나 그 힘도 사령탑인 청장이 누구냐에 따라 크기가 달랐으니, 이 또한 국세청, 아니 권력기관이 갖는 하나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역대 국세청장 가운데 외형적으로 '힘'을 가장 많이 가졌던 청장으로는 초대 이낙선(李洛善) 청장과 5대 안무혁(安武爀)청장을 꼽을 수 있다.
이낙선 청장은 국가재건이란 대명제를 앞에 둔 통치자의 의중에 의한 것이고, 안무혁 청장은 '통치그룹'의 권력구도에 따라 그 힘이 부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랬기에 안무혁 청장때는 '청장이 전하라더라'는 말 정도에 검찰 수뇌부도 꼼짝없이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세청 직원들 가운데는 간혹 청장의 '배경'을 믿고 목에 힘을 주는 경우도 있었고, 그로 인해 유·무형의 '말썽'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시내 한 세무서장은 관내 행사장에 초대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체면을 너무 의식한 행동으로 엄청난 구설수에 휘말렸다.
문제의 발단은 승용차. 평소 관용차 '포니1'이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해 오던 A서장이 한번은 폼을 좀 잡아볼 생각으로 친구더러 행사장까지만 같이 가자고 했는데, 수퍼사롱에서 내리는 그를 보고 '집에서는 대형차에다 기사까지 두고 산다'는 말이 나돌아, 결국 국무총리실까지 불려다니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 서장은 그 일로 찍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뚜렷한 이유없이 1년반쯤 지나 사표를 냈다.
청장의 '힘'은 조직을 확대하는 쪽으로도 단단히 한몫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廳이 1급 승격('83년)과 함께 직세·간세·조사국장의 급수가 3급 부이사관으로 격상됐으며, 방산·남인천·남양주세무서가 신설되고, 세무공무원교육원 주임교관(서기관)이 12명이나 증원된다. 여의도·개포·광명세무서가('83년), 또 여러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본청에 1급인 국제조세조정관이 신설('87년)된다.
'국세청은 청와대와 가까워야 된다'는 막연한 논리가 실제로 현실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국세청이 청와대와 지척인 합동통신 사옥이던 지금의 수송동으로 옮긴 것인데, 이 또한 국세청의 파워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군사정권의 굴절된 잔영이 오늘까지 계속 투영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국세청만큼은 조직 운영에 관한한 상대적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세정가의 여론이다. 이는 안무혁 청장 취임 초기에 국세청 일부 간부가 "워커 신던 사람이 뭘 안다고…"라면서 군출신 국세청장을 강하게 비판했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이례적이다. 이는 청장이 그 막강한 힘을 조직을 위해 많이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87.5월 안무혁 국세청장은 안기부장으로 중용된다. 일개 외청장이 당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불리는 자리에 오른 사상 초유의 이 사건은 당시 국세청 위상을 단적으로 웅변해 준다.
<本紙편집주간>
se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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