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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8월이 되니까 `제2차 세계대전말 미국이 왜 日本에 원자폭탄을 던지는 殘酷을 恣行했을까?'하는 원망의 소리가 日本人 사이에 높아지고 있다.
하기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수십만명의 死傷者를 내고 都市 전체가 온통 잿더미가 되는 慘禍를 입은 그들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상대방 `미국'의 그때의 처지를 이해하면 그런 말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1억 人口(우리 조선인을 포함해서) 마지막 한사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덤비던 독살스러운 人種…….
나는 단언한다. 그때 日本에 대한 `原爆洗禮'가 없었던들 그 무서운 전쟁은 적어도 3~4년은 더 계속되었을 것이고 그네들 군인은 말할 것도 없고 民間人들까지 수백 수천만명이 더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그때 日本땅에 있어서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데 그들 日本政府는 괜히 말로만 `一億總玉碎'를 외쳤던 것이 아니다.
국민 모두(우리 조선인을 포함해서)에게 竹槍을 들려서 美軍의 上陸에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그 實證으로 `오끼나와'에 상륙하는 美軍에게 그 곳 女性決死隊 히매유리(姬百合)가 그 연약한 손에 죽창을 들고 덤비다가 수없이 죽어간 사실이 그것을 잘 例證하고 있다.
전쟁이 더 계속되었다면 우리 朝鮮人은 과연 어찌되었을까?
북해도탄광 캄캄한 막장으로 내몰리고 강제징병으로 囚人처럼 死地에 끌려가고 15~16세의 어린 少女가 `性의 노예'가 되어 수만리 南方에 채어간 만만한 존재의 우리는 그들 本國人보다 훨씬 더 참혹한 禍難을 당했을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上空에 번쩍 작렬한 原子 폭탄 두발……
죄없이 죽어간 많은 生靈에게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일이지만 전쟁을 빨리 끝내서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選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