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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3.07. (토)

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우리에겐 표현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수많은 감정을 담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꺼내어 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사랑과 같은 온기 어린 마음일수록 입술 끝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분명 마음속에는 있는데, 차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맴도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기묘한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아밋 쿠마르(Amit Kumar)와 니컬러스 에플리(Nicholas Epley)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이나 애정을 표현할 때 상대가 어색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표현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어색하게 들릴까 봐 걱정하지만, 메시지를 받는 사람은 전달자의 말솜씨보다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의도에 더 크게 반응한다. 그 결과 우리는 진심 어린 표현이 상대에게 줄 기쁨과 안도감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망설임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명성의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과도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와 케네스 사비츠키(Kenneth Savitsky)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긴장이나 어색함이 타인에게 실제보다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상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우리의 어색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히려 진심 어린 표현을 받았을 때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따뜻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필자 역시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사랑을 의심한 적은 없다. 오히려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받았음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세대의 부모님들은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데 익숙했을 뿐이다. 자식의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출가한 자식이 타고 온 차를 닦지 말라고 하는데도 몰래 나가 닦아주시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소박하고 고요한 행동들이 곧 그분들의 지극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더욱 깊이 느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는 여전히 서툰 세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시간을 지나며 한 가지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된다. 마음속의 감정은 적절한 때에 표현되지 않으면 결국 ‘후회’라는 이름의 앙금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표현되지 않을 때 마침표를 찍지 못한 ‘미완의 문장’처럼 마음 언저리를 떠돌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스스로에게 작은 다짐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가능한 한 미루지 않겠다고.

 

아들이 어렸을 때는 그 고백이 어렵지 않았다. 아이를 품에 안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일은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 강원도 동원예비군 훈련으로 집을 비웠을 때,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낯선 어색함이 스며들었고, 마주 보고 진심을 전하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때 필자가 찾은 방법은 편지와 문자 메시지였다. ‘사랑한다’는 짧은 한마디였지만 진심을 전하기에는 그리 부족하지 않았다.

 

물론 사랑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눈빛이나 어머니의 행동 속에 사랑은 이미 깃들어 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삶을 지탱하는 그 뒷모습 자체가 사랑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랑’과 ‘말로 확인하는 사랑’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여러 심리학 연구는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가 관계의 친밀감을 높이고 대인관계의 만족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관계의 뿌리를 더 깊게 내리게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한국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자주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평소 엄격하고 말수가 적던 아버지가 임종 직전 아들에게 힘겹게 입을 뗀다. “사실은 너를 많이 사랑했는데.... 그 말을 한 번도 못 했구나.”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앞에서 아들도 함께 울먹인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사랑한다”라는 말은 늘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힘겹게 나오는 것일까. 사랑은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유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매일의 시간 속에서 나누어야 할 삶의 언어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순간에야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세월이 흐르며 깨닫는 또 하나의 진실은 사랑의 표현이 상대를 위한 선물인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치유라는 점이다. 토머스 길로비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잘못했던 행동보다 하지 않았던 행동을 더 오래 후회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생의 끝자락에서 마주하게 될 가장 큰 후회 역시 큰 실패가 아니라, 끝내 말하지 못한 사랑과 표현하지 못한 감사일지도 모른다. 잠깐의 망설임 때문에 미뤄 두었던 그 한마디가 결국 인생 전체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되는 셈이다.

 

감정의 표현에는 분명 ‘골든타임’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마지막 순간을 위해 아껴 두는 말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사용해야 할 일상의 언어다.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내 마음속에만 고여 있지만, 표현된 사랑은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인생에서 후회를 줄이는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이것이다. 마음속의 따뜻한 감정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

 

표현하라. 그러면 사랑은 살아 움직인다.

표현하라. 그러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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