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법학회·8개 경제단체 공동 세미나
주주간 이해충돌, 법 개정보다 공시규정 강화 바람직
이사 충실의무 확대보다 경영판단 원칙 법제화 시급
경제계와 학계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 이달 7일까지 총 8건이 발의됐다.
기업법 관련 대표 학회의 전공 교수들과 전문가들은 8개 경제단체와 한국기업법학회가 15일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논란과 주주이익 보호' 세미나에
이같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법체계 혼란만 훼손하고 실효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토리야마 쿄이치 일본 와세다대 로스쿨 교수는 일본 회사법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불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 회사법과 한국 상법은 법 체계가 동일한데, 만약 한국이 이사가 주주에게 직접 의무를 지도록 법률을 개정할 경우 지금까지의 회사법 체계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회사 채권자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권리까지 침해하게 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사가 임무를 게을리해 주주가 입은 직접적인 손해에 대해 회사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통해 이사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만큼, 이사와 주주 간에 별도의 법률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에 대한 실익도 전혀 없다"고도 지적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회에 계류된 상법 개정안들이 주주 보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회사법 위임 체계에도 맞지 않다"며 선관의무, 충실의무, 주주이익 보호, 환경·사회 고려 등을 담은 수정안을 제안했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을 개정해 △이사의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 의무 △이사의 충실의무(현행) △주주 전체의 정당한 이익 보호 노력 및 특정주주 이익·권리 부당 침해 금지 △환경·사회 등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사항 고려 등을 열거하자는 것이다.
영미법 체계에서 발전한 미국의 신인의무를 한국의 회사법(대륙법계)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박준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회사법은 법조문에 규정된 회사와 이사간 엄격한 위임관계에 근거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인정하지만, 영미법계는 판례를 중심으로 신인의무(이사 충실의무 포함)를 인정해 왔기 때문에 법리 체계가 태생부터 다르다"며 "미국 판례에서 인정하는 신인의무의 법리를 우리 상법에 추상적 문구로 그대로 이식할 경우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무리한 상법 개정보다 주주간 이해상충 리스크 관리·감독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영기 고려대 금융법센터 교수는 "일본은 도쿄증권거래소 공시규정 강화를 통해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지배주주가 있는 상장회사에서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상충 리스크가 있는 경우 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소수주주의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이런 방식이 무리한 상법 개정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세미나 토론의 좌장을 맡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 분할·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수주주 피해를 ‘이사 충실의무 확대’로 해결하려는 것은 올바른 해법도 아니고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법에 이미 소수수주 보호 규정들이 구비된 만큼, 법체계를 훼손시키는 무리한 법 개정에 반대하며,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사의 책임을 면제해 줄 ‘경영판단원칙’ 도입”이라고 주장했다.
상법에 직접적인 명문으로 주주와 이사 간 의무관계를 나열하려는 입법 시도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서성호 기업법학회장은 “주식회사법제의 이론적 근간을 흔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사를 보수적인 경영으로 내모는 과잉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의무사항에 '환경·사회 등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고려'를 추가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기업가의 경영판단 사안이자 기업 재량에 해당하는 사안을 민간기업에 적용되는 ‘상법’에 명문 규정으로 넣는 것은 “사기업의 영리행위 보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입법 만능주의”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주주에 대한 이사의 선관주의의무는 법 개정 없이 기존 상법 체계 내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며, 주주간 이해 상충 사안을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로 해결하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