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무공무원이 시민들에게 살갑게 대접을 받았던 시기는 거의 없는 듯하다. 직업 속성상 남의 재산의 속내를 들여다 봐야 하는 어려운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무공무원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금이 사회 유지의 재원인 이상, 내가 그 직업이 싫어서 그만두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워야 그 공동체가 돌아간다. 세무공무원은 현직에 있든 아니면 퇴직을 하든, 세상이 그들을 보는 눈초리는 그리 '곱지'는 않는 것 같다.
외국의 경우도 우리네 사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네들과 대화 중 내가 세무공무원 출신이라고 밝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지레 겁을 먹는 표정을 짓는 것을 자주 본다. 자기네들끼리도 상대방이 세무공무원이라고 하면 가까이 하기에는 뭔가(?)가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프랑스는 우리네의 부정부패와는 달리 세법의 딱딱함이 세무공무원의 얼굴에 그려지는 듯했고, 또한 세법을 전공했다고 하면 다른 공법 전공 학생보다도 세무공무원 및 세법전공자의 인간본성과는 상관없이 첫 인상이 세법규정의 복잡함과 징수규정의 몰인정성과 동일시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세무공무원은 어느 시대나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러나 정작 사회로부터의 따뜻한 대접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모순 속에 살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삭개오(헬라어로는 자크카이오스:의로운 자 또는 순진한 자라는 의미임)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전 이스라엘이 로마 식민지로 남아 있을 무렵, 예루살렘 옆 위성도시인 여리고(Jericho)라는 지역의 세무서장으로 있었다. 로마 식민지 시절,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해 원수의 나라에 바치는 직업을 가진 그가 당시 시민으로부터 따돌림과 원망의 대상이 됐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는 부자였다. 세무서장이면서 부자라니? 더욱 왕따(?) 신세였으리라.
그의 인생 고민이 깊어질 그 무렵, 당시 풍운아였던 예수가 자기 관할지역인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보고자 했다. 만나서 자기 자신의 외로움을 호소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이 하도 많아 직접 볼 수가 없어서 그는 근처 뽕나무에 올라가서 보고자 한다.(이스라엘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사막지역이어서 큰 나무는 거의 없다). 그가 키가 작아서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하지만, 세무서장 체면에 뽕나무에 쪼르르 올라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올라가서라도 보지 않으면 안될 그 무슨 사연이 있었지 않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예수가 그를 알아보고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고 한다.
그는 큰 집에 살고는 있었지만,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직업을 가진 그에게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그런 그의 집에, 예수가 직접 와서 묵고 가겠다고 하니 얼마나 좋았을까. 고기도 굽고 좋은 포도주도 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아니했는데 "예수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얻은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누가복음 19장8절)"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리 말했을까? 아니면 본심이었을까?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삭개오의 재산이 부정을 통해서 축적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삭개오의 당당하면서도 거침없고 자신있는 태도에서 볼 수 있다. 만일 그 반대라면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거짓맹세를 하겠는가. 상식적으로 봐서 1천만원 부정한 돈을 받았으면 본전 이외에 4천만원을 더 줘야 하는데, 그 재산이 아무리 부자라도 부정한 행위를 계속한다면 얼마 못 가서 그 재산은 거덜날 것이기 때문이다. 세무공무원이 그 정도도 계산 못했겠는가.
그냥 팔자려니 생각하고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았다면, 삭개오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뽕나무에 올라갈 일도 없었을 것이며,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삭개오의 외로움이 묻어나서 속이 짠하다. 삭개오! 그는 왜 그런 고민을 했을까, 높은 자리,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외로워 했을까? 그냥 편하게 살다가 죽지 않고,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었을까? 대답은 내가 알 수 없지만, 그게 인생이 아닌가 한다.
세금과 세무공무원! 간단하지 않은 주제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세금에 대한 불만은 바로 정권교체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세무공무원이 그리 쉽게 무시해도 될 만한 직업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게 어디 세무공무원에게만 국한될 일인가.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교수 모두 너무나 인류역사에 막중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는 일만큼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 속성상 돈과 물질과 명예에 약할 수밖에 없다. 고고한 인격을 갖춘 사람도 이것들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것을 자주 본다. 세무공무원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동양사회에서는 공직업무분야 이외에도 개인적인 사생활 분야까지의 청렴을 요구받고 있다. 이와 같은 요구를 다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본분을 다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수많은 세무공무원을 보게 된다. 이들을 사회의 냉대로부터 지켜주는 방패막이는 없는가?
올해부터는 공무원이 부정한 돈을 받아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징역형과 별도로 받은 금액의 2∼5배의 벌금형을 받도록 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부정한 돈을 받은 행위를 호도할 맘은 없다. 대부분의 세무공무원은 청렴하고 자기 맡은 일을 충심으로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몇몇 사건으로 인해서 토색하지 않은 대다수 세무공무원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누가 헤아려 주나. 부정한 돈을 거절했을 경우, 해당 공무원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칭찬을 받을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우리 주변의 세무공무원들이 삭개오 처럼 사회로부터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무시되고 멸시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기 자신의 사회적 책임 완수를 위해서 삭개오처럼 '토색한 것이 있다면 4배라도 돌려줄 수 있다'는 세무공무원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서 유대사회로부터의 왕따(?)를 해결했다.
우리나라 세무공무원은? 부정부패한 세무공무원이야 그렇다 치고, 대다수의 공무원조차도 그냥 사회로부터 질시와 냉대에 대해 신경 끄고(?) 그냥 주어진 시간동안 봉사하다가 가면 그만인가? 그럴 순 없다. 또한 일도 잘 될 턱이 없는 것이다. 신바람이 나지 않는데 무슨 효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무공무원이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고 부패하면 그 사회가 망하게 되어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투명한 세무제도와 충성스런 세무공무원이 있다면 그 사회는 흥하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의 흥망성쇠가 세무공무원에 달려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회복의 시작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