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된 '타워팰리스 살인사건'에서는 아내 이모(51·여)씨가 남편을 살해하기 직전에 가정폭력이 있었는지, 남편 살해가 계획적이었는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변호인은 이씨가 가정폭력을 당해왔다는 진술을 토대로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범행이었다는 취지의 변론을 펼쳤다.
검찰은 그러나 범행 무렵인 최근 1~2년 사이에는 가정폭력이 없었고, 이씨의 범행에 계획적인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살해 직전까지 폭력" 이씨 주장 신빙성은
이씨와 변호인은 남편 A씨가 결혼 직후부터 30여년에 걸쳐 이씨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했고 범행 당일에도 폭언과 폭행을 휘둘렀다고 밝혔다.
이씨 측 변호인은 "이씨가 만 19세에 A씨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고 임신이 돼 혼인생활이 시작된 것"이라며 "결혼 이후 이씨는 장기간의 폭행과 욕설, 성적 학대를 당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씨는 술에 취해 쓰러진 남편을 보면서 이제껏 당해온 학대와 앞으로 당할 학대가 떠올라 남편을 죽이고 자살할 생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변론했다.
이씨 역시 "남편이 최근엔 지능적으로 머리를 때리는 방식으로 폭력을 이어왔다"며 "범행 당일도 발로 걷어차고 폭언과 패륜적인 요구를 하기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이씨 측은 관련 증거로 과거 남편의 폭행으로 인한 코, 눈뼈 등 골절 진단서, 수술 소견서 등을 제시했다.
반면 검찰 측은 범행 직전 수년간은 남편 A씨의 폭력이 없었다는 취지로 이씨의 진술을 반박했다.
검찰은 "2013년 10월 이후 이씨의 병원 진료는 주로 영양주사, 비타민주사 등이 목적이었다"며 이씨의 최근 가정의학과 클리닉 진료내역을 제시했다.
검찰은 또 "범행 당일에도 여성 경찰이 이씨의 몸을 샅샅이 뒤졌지만 멍이나 폭행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과거 이씨가 남편으로부터 간통죄로 2차례 고소 당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이씨의 진술 전반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변론을 펼쳤다.
재판부는 결국 검찰 측 의견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 "이씨가 범행 당일에는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결박 후 살해' 계획적인가 우발적인가
이씨의 범행 방식을 놓고서도 양측은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다. 범행 당시 이씨는 만취해 쓰러진 남편의 손목에 행주를 대고 30센티미터가량의 케이블 타이를 묶어 결박한 후 남편을 살해했다.
검찰은 이에 관해 이씨가 미리 범행을 계획하고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검찰은 이씨에게 "케이블 타이를 묶기 전에 왜 행주를 댔느냐"고 물으며 "(남편의 반격을 방지하려 결박했다면) 시간 단축이 최우선인데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행주를 대고 결박을 해도 사망 후 일주일 정도 지나면 결박의 흔적이 드러난다"며 "A씨는 아마 이 같은 법의학적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이씨는 범행 직후 케이블 타이와 행주를 쓰레기 하치장에 버렸다"며 "A씨에 대한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케이블 타이를 언급하지도 않았다"고 꼬집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사망 당시 남편 A씨의 머리에 상흔이 남아있었고 A씨가 술뿐만이 아니라 수면제와 우울증약도 함께 섭취한 상태였던 점을 추가로 제시했다.
반면 이씨는 "케이블 타이를 버린 건 증거인멸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인 후) 자살하기 전에 집안을 정리하려는 의미였다"고 맞섰다.
이씨는 "제가 집에서 뛰어내리면 누군가가 들어올 텐데 지저분한 집안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며 "케이블 타이에 대해 진술하지 않았던 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케이블 타이의 출처에 관해서도 "평소 남편이 가학적인 성행위를 할때 사용하던 것"이라며 "그 느낌이 싫어서 행주를 대고 사용하던 버릇이 남아 남편을 죽일 때도 행주를 함께 사용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변호인 측은 이 같은 이씨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망한 A씨의 방에서 나온 성인물 비디오를 제시했다.
변호인은 또 이씨가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후 투신하기 위해 타워팰리스 창문을 뜯어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며 현장 사진도 제시했다.
이씨 측은 이와 함께 ▲머리의 상흔은 A씨가 술에 취해 혼자 넘어져 생긴 것이고 ▲남편이 어머니와 내연녀의 죽음으로 인해 수면제에 의존해왔으며 ▲재산관계로 인한 범행 동기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이씨의 범행 계획을 전면 부인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범행을 계획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단순히 우발적 범행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