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인척 관계가 아닌 남녀가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종교경찰 수장이 남녀동석 금지 정책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사우디 종교 경찰 수장인 셰이크 아흐메드 알-감디는 지난해 12월 현지 일간지 `오카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함께 섞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알-감디는 칼럼에서 "어떤 이들은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근거해 남녀동석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샤리아법은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이런 잣대라면 여성 가정부를 둔 수많은 가정도 법을 위반한 셈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그가 쇼핑몰, 식당, 대학 등지에서 남녀동석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순찰활동을 벌이는 종교경찰 기관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보수파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법률학자 셰이크 압둘 아지즈 알-셰이크는 "우리의 종교적 의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국민을 지옥으로 이끄는 것"이라며 남녀동석은 앞으로도 계속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파의 반발이 격화되면서 알-감디 수장에 대한 경질설도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사우디 국영 통신사는 그가 종교경찰 수장직에서 경질됐다고 보도했다가 몇 시간 뒤 기사를 삭제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여성의 운전행위조차 허용치 않는 엄격한 이슬람 왕정국가이지만 최근 들어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0년만에 처음으로 2008년 12월 제다의 한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돼 남녀 관객이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고, 지난해 9월에는 첫 남녀공학 대학인 킹압둘라과학기술대학교가 개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 정부가 남녀동석 금지 정책을 계속 고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킹사우드 대학의 파우지아 알-바크르 교수는 "남녀동석 금지 정책으로 인해 건물을 지을 때도 불필요한 공간을 더 고려해야 하는 등 경제적 폐해도 만만치 않다"며 "사우디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이 정책은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