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자 부당성 지적한 국세청 과장 10년전 근무署 재발령
바뀐 청장이 배려인사, 공직관 평가돼 최장수 稅務人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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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가 알기로는 법없어도 살 사람인데…."
"미운털이 박혔나? 그래도 그렇지 좀 심한 것 같지 않아?"
80년대 중반 어느 날. 국세청 서기관 인사가 끝난 후 서울시내 일부 서장들이 사석에서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서장들은 하나같이 국세청 한 서기관의 세무서장 발령에 대해 안타까움 반, 의구심 반으로 제각기 의분 섞인 변을 토하고 있었다.
인사에 대해서는 각기 처한 입장이나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가 서로 엇갈릴 수 있지만, 한 특정 세무서장 인사에 대해 이처럼 한목소리로 아쉬움이 성토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국세청 과장 A씨. 고참에 속하는 그가 이미 10여년전 서기관 초창기때 서장으로 근무했던 안양세무서로 다시 발령이 난 것이다. 더욱이 그 배경에는 국세청 고위직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설득력있게 떠돌았다. 특히 그 동기(動機)가 이권이 낀 한 기업의 소유권 향방과 관련해서 A씨가 소신있는 발언과 부당성을 지적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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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말들을 종합하면 이렇다.
국세청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특정 업종의 K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국세청에서 사실상 모든 키를 쥐고 있는 업종의 이 회사를 국세청 고위직 인사가 대리인을 내세워 소유권을 쟁취한 것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를 두고 '회사를 통째로 삼킨 국세청판 5공 비리'로 회자했다.
멀쩡한 회사의 경영권이 국세청 고위인사의 영향력 행사로 좌지우지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A씨는 그 부당성을 제기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하기 십상이지만 평소 바른말 잘하고 소신이 곧기로 정평난 그는 과연 주위의 평답게 노골적으로 그 고위직을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지, 누가 봐도 회사를 뺏는 것 아닙니까?"
부하직원 또는 극히 소수지만 이 일의 개요를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면 그는 함께 공분을 토했다.
그러다 보니 A씨의 행동은 고위직으로부터 '눈엣가시'가 됐고, 결국 그로 인해 10년전에 근무했던 세무서장으로 재발령을 받는 '수모'를 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인사패턴이나 관행으로 볼때 '이 정도면 그만 두겠지' 또는 '그만두라'는 의미가 다분히 담긴 인사다.
A씨는 묵묵히 안양세무서로 향했다. '옳은 말을 했는데도 힘없는 사람은 이렇게 당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인사권자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침 한번 꿀꺽 삼키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특히 야음을 틈타 몰래 전해오는 직원들의 성원이 그를 고무시켰다. 또 국세청내 여러 지인들이 '그래도 당신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고 격려해 올 때는 보람 같은 것도 맛봤다.
얼마후 부임한 서영택(徐榮澤) 국세청장은 A씨를 부산청 간세국장으로 발령했다. 면면을 두루 살펴 신경써 배려한 것이다.
A씨는 한 모임에서 부산청 간세국장 시절이 국세공무원 생활 중 가장 많은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국세청 지휘부에서부터 직상급자, 부하직원에 이르기까지 순리가 통하는 근무환경을 가장 진하게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A씨는 그 '수모'의 안양세무서 재발령을 가져온 바른말 잘하고, 청렴·강직 이미지가 요로에 각인돼 세무대학 교수로 발탁된다. 지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그는 세무대학을 정년퇴직했다. 보통 사람은 감히 엄두도 못낼 특별한 영광을 안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세청 공무원중에서 가장 긴 근무연한(45년) 신기록(행자부 기록)을 세우는 남다른 행운도 만끽했다. 지금은 장남이 운영하는 석유관련 회사의 고문을 맡아 '제2의 인생'을 정력적으로 즐기고 있다.
문제의 그 국세청 고위직 인사는 '각본'대로 명의변경을 해뒀던 K사의 경영주가 돼 있다.
<서채규 本紙편집주간>
se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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