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가운 소식, 법인세율 인하안 통과
여야 정치권은 11월 20일 2005년분부터 법인세율을 2% 포인트 내리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정치권이 우리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여 향후 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여야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정부 관계자의 설명처럼 투자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된 환경에서 각 국들은 법인세율 인하를 통한 외자유치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은 현재 27%로 비록 미국(35%) 등 선진국들보다는 법인세율이 낮다고 하지만 경쟁국들인 홍콩(16%), 싱가포르(22%), 대만(25%)보다 높은 편이어서 법인세 인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법인세 인하는 미룰 필요 없이 당장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세입감소 예상분만큼 세출을 감축시키려는 노력이 동반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 법인세 인하가 외국인 직접투자 및 내국인 투자의 확대, 경기 부양이라는 결실을 제대로 맺을 수 있도록 다양한 규제도 함께 과감하게 개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육, 의료, 문화, 공장입지 등과 관련된 다양한 규제들을 개선하여 내?외국인 투자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제반 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정치권이 다시 합심해 주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이러한 법인세 인하에 대한 정치권과 재계의 노력을 크게 왜곡하고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참여연대는 이 조사결과를 크게 왜곡하여, 법인세 인하가 투자 결정과는 무관하므로 투자의 증대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으며 경기부양 효과도 미미할 뿐 아니라 정치권의 법인세 인하 노력이 마치 기업들이 세금납부액을 줄이고자 하는 내심에 동조하여 유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얼마나 경제에 내재하는 엄연한 논리를 무시하는 억지스러운 것인지를 보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참여연대의 견강부회적인 해석
(1) 투자는 법인세율과 무관하다는 억지 주장
11월 14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서울 소재 350개 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를 인하할 때 기업들이 투자할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는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여유자금을 내부에 유보하여 관망한 후 결정하겠다.”고 했으며,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대답이 12.2%, 투자 계획이 없다는 기업이 27.8%였다.
이 설문조사 결과를 두고 참여연대는 응답자의 “90%에 가까운 기업들이 법인세율 인하와 기업투자와는 별개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고 완전히 사실과 다르게 곡해하고 있다. 이 90%라는 수치는 법인세가 인하되면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좀 더 지켜보겠다고 하는 사람들 60.0%와 투자계획이 없다는 27.8%를 합하면 87.8%가 되므로 나온 것이다. 즉, 투자를 할지 그 여부를 좀 더 관망하겠다는 기업들을 전혀 법인세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법인세 인하가 기업들이 투자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법인세율이 기업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다.
투자를 당장 실행하겠다는 기업들이 12.2%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투자 환경이 그렇게 좋은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며 이 점은 지금 투자활성화를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하다고 여기는지에 대한 설문대상자들이 느끼는 정책들의 순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동 설문조사에서 투자활성화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방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투자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일관성 유지」가 중요하다고 답변한 기업이 50.8%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규제개혁과 노사 안정을 통한 경영환경 개선」이 중요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38.0%였으며, 법인세 인하가 그렇다는 답변이 7.1%, 재정지출 확대가 중요하다는 비율이 4.1%였다.
그렇다면 이것이 법인세율 인하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다. 이 사실은 법인세 인하 이외에도 여타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지 참여연대가 주장하듯이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를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이 조사 결과는 지금 현재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어 투자를 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에 중요한 장애요소가 되고 있으므로 무엇보다도 정책 일관성을 유지해 달라는 주문이며, 오래 전부터 정부에서는 규제개혁을 실천하겠다고 무성하게 말해왔지만 투자와 관련하여 여전히 출자총액규제, 수도권 공장입지에 관한 규제 등 각종 규제가 투자 결정에 걸림돌이 될 만큼 많다는 뜻이다. 노사관계의 안정은 기업투자의 기본적 환경에 속하는 문제이다. 노사관계가 불안한 상태에서는 투자를 할 수 없음은 너무나 기본적 사실이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현재 기업들은 노사관계의 안정에 대해서도 별로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만약 현재 기업들이 이런 기업의 투자와 관련된 기초적인 여건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당연히 이런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것이 투자활성화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법인세 인하가 투자활성화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법인세율의 인하는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때문에 법인세율의 인하가 투자의 크기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마치 자동차의 가격이 자동차의 수요와 무관하다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물론 자동차 값이 떨어지더라도 여유가 많지 않거나 보다 시급한 데 쓸 일이 있는 일부 사람은 그 하락 폭이 충분하지 않으면 자동차 구매를 미룬다. 일부는 살지 말지 망설일 수 있으며, 일부는 자동차를 구입할 것이다. 이것이 소위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때 그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고 서서히 나타날 수는 있다. 가솔린 가격이 오른다고 당장 자동차를 처분하지는 않지만 지하철을 더 많이 이용하고 헌 자동차를 처분할 때가 되면 새로 자동차를 살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OPEC의 담합에 의한 석유가격의 인상은 에너지 소비구조를 쉽게 바꾸지 못하므로 당장은 높은 가격에 사올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 더 많은 석유자원의 탐사를 가능하게 하고 석유 에너지 소비를 절약하는 기술의 개발이 이익이 나는 사업이 되도록 하여 석유공급을 늘린다. 법인세율의 인하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기업들이 지금의 투자환경을 열악하게 느껴 투자를 관망한다고 하더라도 법인세의 인하가 실현되고 여타 여건이 개선되면 투자를 늘릴 개연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2) 경기부양효과가 없다는 억지 주장
참여연대는 아울러 법인세율의 인하가 경기를 부양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정치권과 재계의 주장이 논리가 취약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대한상의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업들의 67.1%가 “조금 도움이 될 것”, 23.0%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하여 대체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참여연대에서는 법인세 인하가 왜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조사결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경우, “44.8%가 경영심리 안정”을 이유로 들고 있는 반면, “기업투자 확대”와 “외자유치 촉진”을 꼽은 사람은 19.2%와 3.6%로 22.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실물투자로 연결되는 효과로 인해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기업인들은 별로 많지 않으므로 그 논리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런 참여연대의 논리는 경제적 현상이 심리적 현상의 발로라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매우 취약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투자의 결정도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이며, 미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크게 좌우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경영심리가 안정된다는 것은 앞서 법인세율을 인하할 때 투자를 관망하겠다는 기업들의 심리와 다르지 않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던 데에서 탈피하기 시작한다는 신호인 것이다. “경영심리의 안정”이란 항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법인세율 인하가 정부와 정치권이 현재의 경기 침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여기에 이런 방향으로의 정책이 약간 더 보태어질 때 얼마든지 투자의 증대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심리적 현상을 물리적 현상과 분리하려는 것은 경제 현상은 결국 개별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과정을 통해 표출되는 행위들이 상호작용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기본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3) 기업인들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성숙한 의식에 대한 곡해
앞서 말했듯이 법인세율 인하는 세출감소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2002년 기준으로 19조 2000억 원 대의 세수로 전체 국세의 18.5%를 차지하는 법인세의 2%포인트 인하는 기업투자와 파생적인 관련 소비 등이 전혀 늘어나지 않을 경우 최대 약 1조 6000억 원의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 물론 법인세 인하로 외국인 투자와 국내 투자가 늘어나고 소비와 고용이 늘어날 경우 세수 감소분은 훨씬 적어질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세수가 늘어날 수도 있지만, 법인세 인하 시 세수만 감소하고 재정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다소간의 우려는 매우 건전한 것이다.
이런 건전한 우려는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59.3%가 재정적자의 가능성이 다소 있다고 보았으며, 33.9%가 이런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았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이 1조 6000억 원 대의 세출 감소를 당장 감수하기가 어려웠던 정부로서도 2004년도부터가 아니라 2005년도부터 법인세 인하를 실현하되 그 폭을 원래 의원입법으로 한나라당이 제시한 1%포인트보다 1%포인트를 더 높여 2%포인트로 하기로 제안하여 합의에 이른 것이다.
참여연대는 재정적자의 우려가 다소 있다는 건전한 의구심을 보이는 답변(59.3%)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답변(6.3%)을 합해 66.1%가 경제활성화가 없이 세수 감소만 발생하여 재정적자가 우려된다는 답변이 66.1%라고 해석하여 이런 건전한 의구심을 법인세 인하가 마치 경기침체와 재정적자를 가져올 것으로 기업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4) 법인세 인하효과를 믿지 않지만 법인세를 내지 않겠다는 내심을 드러냈다는 억지 주장
이처럼 설문조사의 내용을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하는 참여연대의 주장은 이 설문조사를 통해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효과를 믿지 않지만 법인세를 내지 않겠다는 내심을 무의식중에 드러냈다”는 억지 주장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법인세 인하 효과는 어떤 재화의 가격을 인하하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기업인들이 법인세 인하효과를 믿지 않는다는 해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투자 여부를 관망하는 것도 법인세의 엄연한 효과인 것이며 참여연대의 주장은 재화의 가격이 수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기업인들이 믿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튼 만약 기업인들이 실제로 이를 믿지 않고 법인세율 인하를 통해 법인세를 적게 내겠다는 내심을 가지고 법인세율 인하를 주장하였고 정치인들과 정부가 이에 부화뇌동하였다면, 하필 법인세 인하를 할 때에는 그 의도를 숨기고 있다가 대한상의에서 설문조사를 할 때에는 왜 그 의도를 특별히 드러낸 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3. 맺는 말
건전한 비판과 건전한 의구심은 보다 나은 정책을 찾는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과 건전한 의구심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 원리에 입각한 분석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비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남의 의도를 견강부회식으로 자기가 편리한대로 해석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번 대한상의의 설문조사는 법인세율만 조금 인하하면 우리 경제가 당장 좋아질 것처럼 환상을 갖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의 하나인 참여연대가 그런 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그런데 놀랍게도 참여연대가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투자의 결정이 법인세율의 인하와 무관하다는 식으로 해석함으로써 경제 원리조차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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