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비감사업무 겸임금지' 쭉정이만 남아···당초 취지 퇴색 시민단체 "개혁후퇴, 국회서 개선할 것"···재경위도 반대의견 고수익 비감사업무 동시 수행땐 회계감사 '미끼상품'으로 전락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와 컨설팅 등의 비감사업무를 중복 수행하는 것은 회계정보의 적절성 여부를 감시하는 본연의 취지를 희석시키는 것으로 마땅히 금지돼야 한다."
정부가 회계제도 선진화를 위해 입법 추진 중인 '회계법인의 감사대상 기업에 대한 컨설팅 업무 등 비감사업무 겸임금지' 방안(공인회계사법 개정안 21조 2항)이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크게 퇴색해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했다.
이 방안은 감사인이 동일기업에 대해 감사업무와 자산·부채의 실사 등 컨설팅업무를 동시에 수행할 경우 감사인이 컨설팅업무 용역 제공자의 입장에서 업무를 수행할 가능성이 있어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은 업무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취지로 추진돼 왔다.
즉 회계법인이 고수익의 컨설팅 업무를 수주하기 위해 주 업무인 회계감사를 '미끼상품'으로 사용하고 이를 소홀히 하게 되는 폐단을 막음으로써 회계감사 업무의 독립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입안된 것이다.
회계감사를 맡은 아더앤더슨이 감사 보수보다 많은 컨설팅 수수료를 수수하고 이로 인해 컨설팅업무와 이해가 상충된 회계감사는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지지 못해 미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던 엔론사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의 사례가 크게 작용했다.
미국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가 악화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해상충의 가능성을 사전에 제어하는 문제에 대해 훨씬 심각한 고민과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아자동차 분식결산에서 보듯 컨설팅 업무를 맡은 회계법인이 감사 업무를 맡을 경우 분식회계를 적발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시정하기는 쉽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곁가지 4개만 금지···개혁 퇴색
그러나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정부안으로 확정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회부한 공인회계사법개정안은 당초 입법예고됐던 개정안에 비해 겸임금지 대상 컨설팅업무를 크게 축소, 분식회계 근절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29일 한국세무사회는 이와 관련 미국 등 선진국들이 기업회계의 투명성 차원에서 회계감사 업무와 상충되는 업무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반해 정부의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은 4가지 금지사항만을 열거하는 데 그쳐 회계제도 개혁의 의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무사회는 특히 당초 입법예고안에서 제외된 세무대리 업무는 회계감사 업무와 이해관계가 깊을 뿐만 아니라 수익성이 높아 이해상충의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수익의 비중에 따라 본 업무인 회계감사가 '끼워팔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10대 회계법인 가운데 총매출액에서 비감사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 법인이 6곳에 달했으며 이중 3곳은 60%를 초과하고 있는 실태를 감안할 때 이같은 개연성은 더욱 짙어진다. 같은 기업의 회계감사와 비감사업무를 병행할 경우 감사업무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반증이다.
정부는 당초 입법안에 포함됐던 ?자산 및 부채의 실사 또는 평가업무 ?재무정보감사 또는 증명업무와 관련이 없는 소송대행업무 등은 제외하고 ?회계기록과 자료 작성업무 ?내부감사업무의 대행업무 등 수익성 낮은 4개업무 겸임을 금지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시민단체 "국회처리 저지활동"
이와관련 시민단체들이 개혁의 후퇴라며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고 국회 재정경제위에서 조차 불합리성을 제기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정부의 회계제도 개혁안은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 강화보다는 그 이익을 보호하는 데 치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국회 상임위 처리 때 이를 개선하도록 하는 활동을 전개하겠다" 밝혔다.
특히 "이해상충 가능성은 회계법인의 수입이 피감사 기업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지 그 컨설팅 업무가 회계감사와 얼마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당한 액수의 컨설팅 업무를 수임하는 기업에 대해 회계법인이 엄격한 회계감사를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참여연대는 컨설팅 업무에 대한 규제는 미국의 기업개혁법인 사이밴스 옥슬리법(Savanes-Oxley Act)과 마찬가지로 '원칙적 금지'로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 법에는 금지되는 컨설팅 업무영역을 광범위하게 열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컨설팅 업무의 경우에도 이 수수료의 연간 총액이 당해 피감기업 보수총액의 5% 미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나마도 감사위원회의 사전승인을 얻은 경우로 엄격하게 제한된다.
특히 이 법 제201조는 금지대상 비감사업무 중 하나로 '법률서비스 및 감사와 무관한 전문가서비스'를 규정, 사실상 비감사업무의 수행을 완전히 제한하고 있다. '상수원'(피감사기업)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수원 관리인'(회계법인)의 이해상충 가능성이 제거돼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미·일 등 비감사업무 사실상 포괄제한
일본 공인회계사법 제24조도 '비감사 업무(컨설팅 업무)로 계속적인 보수를 받는 경우 당해 피감기업에 대해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이해상충의 가능성이 높은 일부 업무만 금지하고 이해상충 가능성이 낮은 비감사업무는 회계사업계의 내부통제 절차를 통해 허용한다는 이같은 정부 법안의 미비점에 대해서는 국회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상임위 처리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재경위 김문희 수석전문위원은 법개정안 검토 보고서에서 "피감사 회사에 대한 컨설팅과 같은 비감사업무의 수행은 회계법인 등이 피감회사에 포획됨으로써 감사인의 독립성과 공익성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면서 "비감사 업무를 전반적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이해상충을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이러한 측면에서 피감사 회사에 대한 일체의 비감사업무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시행령 등에서 규율할 사항도 법률에 직접 열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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