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님! 저도 같이 테니스 치면 안될까요?”
-철거민 이웃들에게 감동주었던 대전 세금쟁이들-
2004년7월26일,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연고가 없는 대전에서 마지막 둥지를 틀게 되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66년 6월, 약관 20세의 나이에 말단 9급으로 출발하여 수많은 난관들을 겪어 가면서 어렵게 40년 가까이를 걸어 왔다.
이제 마지막 관문으로 생각되는 지방국세청장 자리까지 올라왔으니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운 9 기 1’이었다.
이제는 올라올 만큼 다 올라왔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비우고 공직자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 날 대전지방국세청장 취임식장에서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40년 가까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한마디만 부탁했다.
“납세자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겨보자. 그리고 마지못해 일을 하지 말고 스스로 즐기면서 살아가 보자”고 했다.
어차피 우리는 세금쟁이들이다. 아무리 잘해줘도 욕 먹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더라도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일단 긍정적으로 일해 보자고 했다.
나 또한 비록 지방국세청장이라는 자리에 있지만 직원들을 동생같이 아니면 조카같이 대하며 지내고 싶었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 회식이나 체육행사도 가끔 열어 주었다.
또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직원들은 일일이 찾아가 격려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부적인 일은 국‧과장들에게 일임하고 나는 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특히 유관기관이라 할 수 있는 검찰청이나 경찰청 고위간부들과 자주 만나 우리 조직에 대한 애정을 가져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이들과 서로 바꿔가면서 교차특강을 해주기도 하고 두 기관의 간부들과 만나 저녁 회식도 가지면서 우의를 다졌다.
또 관내 언론과는 국세청 공보관의 경험을 살려 국세청 업무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진심을 전달했다.
무엇보다 6개월간의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몇해전부터 곪아 터져 있던 내부 간부끼리의 갈등문제도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이로 인해 외부에서 별로 좋지 않게 보아 왔던 국세청 이미지 개선을 위해 몸부림도 쳐 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난한 철거민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섬기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은 늦은 여름 어느 저녁이었다.
사무실에서 혼자서 밀린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성이 술을 먹고 국세청 뒷문을 발로 차면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창문을 바라보니 들려오는 소리가
“X놈의 새끼들아!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렇게 대낮같이 전등불을 켜놓고 운동을 하다니! 야! 이 세금쟁이 XXX들아!!!”
즉시 직원을 통해 알아보라고 했다.
다녀온 직원 이야기인 즉, 직원들이 퇴근후 건물 청사 앞에 있는 운동장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는데 인근 철거민 아파트에 사는 한 분이 가끔 술만 드시면 저렇게 욕설을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직원들이 회비를 내어 전기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었지만…,
그 때 필자는 깨달았다. 대전지방국세청이 위치하고 있는 이곳 주위에는 철거민 수백세대가 살고 있는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을….
“아! 바로 이것이구나!”
갑자기 필자의 머리에 스쳐가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다음 날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우리 청사 주위에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들이 이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20여개가 넘는 각 과별로 ‘사랑의 동전함’ 을 만들어 매달 10만원 정도 성금을 모아서 인근 아파트주민자치회 대표로부터 추천받은 동별 극빈자 1명씩을 자매결연으로 맺어 이들의 어려운 생계를 지원하면 어떨까?”하고 제안을 했더니 모두들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그 달부터 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혹시 재원이 부족하면 필자가 자주 쓰던 수법(?)인 ‘목야산악회’, 즉 목요일 야간 산행모임을 결성했다.
다행히 지방청 바로 인근에 계족산이 있어 목요일 저녁 5시부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여름인지라 그 시간도 대낮이었다.
필자는 처음부터 빠지지 않았다. 산행시 참가회비는 직책에 관계 없이 무조건 1인당 1만원이었으며 그 중 절반은 저녁식사(도시락) 값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이웃돕기 성금에 보태기로 했다. 뜻이 좋아서인지 많은 직원들이 동참해 주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 어느 날 구내식당에서 성금 전달식과 함께 조촐한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 때 참석한 모두는 한결같이 행복했었다. 그렇게 해서 매달 30여명의 불우한 이웃돕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달 두달 진행되다 보니 지역내 언론에서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하면서 특집으로 다루어 주었다. 또 그 소식을 들은 다른 기관들도 우리의 멋진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달전에 국세청 후문을 발로 차면서 고함을 지르던 그 남성 취객이 필자의 방을 찾아왔다.
“청장님! 저도 같이 테니스 치면 안될까요?”
“물론 칠 수 있지요 언제든지….”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