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주장하며 재판이 있을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한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눈물은 항소심 재판에서도 통하지 않았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우성만 부장판사)는 24일 열린 전 씨에 재판에서 항소를 기각, 원심을 유지했다.
이로써 지난 2월27일 1심 선고공판 이후 전 씨와 인사청탁을 위해 돈을 줬다는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 간의 5개월여에 걸친 치열한 법정공방 2라운드도 막을 내렸다.
◇국세청 현장검증서 사실상 패소 = 전씨 측은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지난 2월 부산고법원장에서 퇴직한 권남혁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피고인을 ’인지부조화’ 상태라고 규정하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지는 못했다.
1심 재판부는 2월27일 선고공판에서 “내 기억은 ’내가 그것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고 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인용, 전 씨의 심리를 ’인지부조화’라고 설명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전 씨의 유죄판결은 지난 5월19일 실시된 국세청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현장검증에서 사실상 결정났다. 이날 검증은 정 씨가 국세청을 방문해 현금 2천만원을 플라스틱 파일에 넣어 전 씨에게 건넸다는 2006년 10월10일 정 씨의 알리바이에 대한 검증이었다.
전 씨측은 당일 국세청 정문 CCTV에 정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실을 근거로 정 씨의 뇌물제공 진술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입증될 나머지 5건에 대한 혐의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 검찰, 변호인이 참가한 이날 검증에서 CCTV에 사각지대가 3곳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전 씨 측 주장은 사실상 설득력을 잃었다.
전 씨는 이후 재판때 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로 결백을 주장했지만 전씨의 눈물이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전 씨는 깨알같이 적은 메모지를 준비해 나와 정 씨의 진술을 부정하는 진술을 할 때마다 눈물과 콧물이 덤벅이 된채 흐느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 재판때마다 법정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정상곤 진술에 손들어 줘 = 정상곤 씨의 진술 외에 별다른 물적 증거가 없는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정상곤 씨 진술의 신뢰성을 확인하는데 집중했다.
재판부는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4일 특별기일을 잡아 정 씨를 상대로 2시간여 동안 직권신문을 벌였다.
이들 두고 전 씨 변호인 측을 비롯, 일각에서는 무죄를 선고하기 위한 ’신호탄’이 아닌가 보고 내심 희망을 걸었으나 이날 판결로 당시 직권신문은 유죄를 확정짓기 위한 확인신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당시 직권신문에서 서류봉투에 현금 1천만원을 넣는 방법에 대해 돈을 가로로 넣었는지, 세로로 넣었는지 등 매우 세밀한 부분에 대한 질문을 던져 정 씨를 한 때 당황하게 만들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진술의 진실성 여부를 파악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정 씨의 진술은 일부 부분에서 최초진술과 이후 진술에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돈을 건넨지 1년이 지난 뒤의 진술임을 감안할 때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 씨에 대해서는 “수사초기 자수시도, 이병대 전 부산국세청장을 통한 상납진술거부 시도 등을 볼때 진술방법, 태도 등에서 진실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신뢰하지 않았다.
◇’김상진 로비사건’ 관련자 대부분 상고 = 전 씨와 정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내려지면서 ’김상진 전방위 로비사건’ 연루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 재판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항소심 재판이 진행중인 김상진 씨는 내달 한차례 정도의 속행재판을 거쳐 선고공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 씨로부터 2천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은 내달 11일 항소심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다.
김 씨와 ’50억원 로비약정’을 한 혐의로 기소된 남종섭, 김영일 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고 상고했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최주완 씨도 상고한 상태다.
김 씨로부터 2천6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세무공무원 허모 씨도 항소기각된 뒤 상고했다.
김 씨에게 공사대금 지급과 관련해 편의를 제공해주고 2천5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P건설 강모 팀장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고 역시 상고하는 등 관련자 대부분이 상고를 한 상태다.
다만 김 씨의 민락동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프로젝트 파이낸싱 과정에서 김 씨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1천500만원을 받은 부산은행 노모 부부장 등 2명은 상고를 포기, 형이 확정됐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