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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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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 隨想]위인들은 우등생이 아니었다

권중원 (세무사)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천재적 요소라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정교사가 '느림보 신부님'이라고 놀릴 만큼 게으르고 말수가 적었다. 문학과 산수 외에는 점수가 형편없어 교사가 "학교를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모든 과목을 골고루 잘할 것을 요구하는 독일에서 벗어나 스위스 연방공대에 입학, 물리학의 천재성을 드러낸 것이다.

'탄호이저'의 작곡가 바그너는 작곡가 마리아 폰 베버가 직접 지휘한 오페라 '사탄의 마수'를 관람하고 지휘자의 꿈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일반과목은 기초과정도 이수하지 못해 졸업장을 받을 수 없었다. 16세가 되던 해는 무작정 학교를 그만뒀고 복학한 뒤 4개월만에 퇴학당했다. 슈베르트도 음악공부가 처진 나머지 아버지가 작곡금지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독일 만화작가 벨헬름 부쉬, 자동차 점화장치 발명가 로베르트 보쉬,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카를 폰 오시에츠키 역시 특정분야에만 유능한 인물이었다.

학교의 규칙 준수와 따분한 분위기에 '돌이키고 싶지 않은 학창시절'이라고 회고한 인물은 처칠, 카프카, 릴케, 보들레르, 지드, 헤세, 브레히트 등이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처칠은 "학교는 회초리가 난무하는 지옥과 같은 곳"이라며 학교를 증오했다. 라틴어와 체육을 유난히 싫어했던 그는 낙제를 거듭했다.

카프카는 소설 '심판', '성', '아메리카' 등에서 학교에 대한 공포를 드러낼 만큼 학교생활을 싫어했다. 훗날 그는 "학교는 개성을 말살하는데 혈안이 돼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릴케는 "소년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절망을 겪었다"고 했으며, 지드는 "학급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신세였다"고 토로했다.

헤세는 15세때 수도원 학교가 싫어 신경쇠약증에 시달린 끝에 도중하차하고 서점 사원으로 일하면서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들은 한 분야의 천재성으로 주목이라도 받았지만 비스마르크, 간디, 루터, 체호프, 마르크스 등은 그야말로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을 통일시킨 비스마르크는 집을 떠나 학교생활을 하면서 "들판에서 말이 쟁기를 끄는 장면만 봐도 집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감성적 소년이었다.

간단한 말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했던 간디, 커닝으로 우등생이란 평가를 받았다는 독일 정치가 아데나워, 성적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들쭉날쭉했다는 페스탈로치 등…. 숱한 위인들의 비천재성은 통렬히 나의 삶을 반추시키고 있다.

나는 늘 우등생이었다. 나의 인생은 성공적이었는가?

지난날의 세월들을 아픔과 회한으로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오늘, 두뇌활동이 덜 왕성해지는 것인지 심신이 노쇠해가는 것인지 정열과 패기가 줄어든 스스로가 아쉽기만 하다. 모자람을 열정과 심취로 위업을 이뤄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위인들이었던 그들에 비해 나는 두뇌는 명석했지만 실패한 지난날을 보냈다. 이제 지난 시간들을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위업을 이룩하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 남아있는 시간마저 빈둥빈둥 보낸다면 내 人生은 '헛되고 헛되도다'는 솔로몬의 노래를 되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시간이 없다. 천지창조, 개벽의 이 기적을  딛고 서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아름답게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열고 닫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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