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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세법·세정·세무 분야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9)

시행 46여년간 장점을 못 살리고 후퇴를 거듭한 부가가치세제

 

한국세정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조세법학계 거목에게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후일담을 듣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대학 세무학과의 출범, 종합소득세제 및 부가가치세제 뒷얘기, 국립세무대학 출범과 폐지, 자료상,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세무사시험제도, 상증세, 세무행정, 지방세, 변호사와 회계사·세무사 등 조세 역사 주요 사건에 얽힌 뒷얘기를 반추하며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지향점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세무회계학 및 조세법학의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한 송쌍종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로부터 '세법·세정·세무 분야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제를 놓고서 실패한 제도였다고 평가하는 견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필자가 회고하여 보건대 부가가치세제가 실패한 제도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 이제까지 46년을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 세수의 측면에서 성공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가가치세제의 시행 초기부터 국세청이 다루는 모든 조세종목 중에서 그 세수액은 당시까지 최고액을 기록하였던 소득세를 제치고 30%를 넘는 기록으로 선두를 달렸었다. 지방세를 포함한 전체 조세종목 30여개 중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유지하여 왔었다.


이와 같은 대기록은 2020년경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즉 2위 또는 3위로까지 밀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이유는 다른 조세의 징세기법이 발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부가가치세가 소득세나 법인세의 선행조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잘못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소득세나 법인세의 세수가 증대되었다면, 그 선행조세인 부가가치세의 세수도 후행조세들과 같이 비례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가가치세의 세율이 지금까지 한 번도 달라진 적은 없었다. 사실은 부가가치세제를 시행하는 30개 정도의 국가들 평균 부가가치세율이 17.6% 수준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세율을 견지하여 온 우리나라로서는 비교적 양호한 성적표를 나타낸 것이 부가가치세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불구하고 부가가치세의 세수가 상대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의 견해로는 과세특례제도나 간이과세제도의 개악에 그 원인이 숨어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오해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하여 인기영합적인 사고가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과세특례제도는 보통의 부가가치세가 비교적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제도이므로, 그러한 제도상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예외적으로 채택한 방법이었다. 다시 말하면 종전의 영업세와 같이 단순한 천분율(千分率)로 과세하는 예외에 해당하는 과세방식이었다. 그리하여 매매업과 같은 일반적인 경우에 직전 1역년(曆年/ 달력에 따른 1~12월)의 외형거래금액(부가가치세가 포함된 공급대가)이 1,200만원에 미달하는 때에는 1,000분의 20의 세율로 과세하고, 대리나 중개 또는 주선 또는 위탁매매 및 도급의 경우에는 1역년의 외형거래금액이 300만원에 미달하는 때에는 1,000분의 35의 세율로 과세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경우에 한 달에 100만원꼴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과세특례자의 숫적인 비중은 대략 80%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초창기에 있었다. 이것은 거래실적을 따지지 않고 사람 머릿수로만 헤아릴 경우에 10명 중 8명이 원칙을 벗어난 예외에 속한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조롱조로 이르는 말로 가분수(假分數)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예외가 원칙을 훨씬 뛰어넘는 비정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작업은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의 세무행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은 이 중요한 과제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어 왔다는 것은 진실로 반성을 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판단된다.


1999년의 일이기는 하지만,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책위원장을 맡았던 나성린 교수는 ‘외국의 경우 과세특례자는 전체 부가가치세 대상자의 5~10% 수준’이라며, “배보다 배꼽이 커진 과세특례자를 폐지하지 않고는 자영업자의 투명한 소득파악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동아일보 1999.5.11. A23면) 2024년 현재의 부가가치세법에 대입하여 말하면,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지 않고는 자영업자의 투명한 소득파악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간이과세자 기준을 다시 현재의 8,000만 원에서 1억400만 원으로 상향조정을 한다는 방안이 2024.2.8.자의 보도에 나타났다.


이 보도와 관련하여 위의 같은 동아일보 보도의 다른 부분을 음미할 필요가 있겠다. “과세특례 기준이 2천4백만 원에서 3천6백만 원으로 오른 1988년과 3천6백만 원에서 4천8백만 원으로 오른 1996년은 공교롭게도 모두 총선이 있던 해였다. 특히 문민정부 시절인 1996년에는 과세특례제도 폐지를 추진하다가 자영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특례기준 상향조정은 물론 간이과세제라는 없던 혹까지 붙여주고 말았다.” 이처럼 선거와 연계되어 제도가 퇴행을 면치 못하게 된다면, 정부가 절실히 바라는 세수확보는 어려워지는 법이며, 반대로 지하경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국민의 의식수준의 향상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된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가 꼭 참고하여야 할 기사가 있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과세표준 양성화 정책으로 전체 사업자 중에서 간이과세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0% 미만으로 떨어졌다. 7일 재경부가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업자 403만4천 명 중 간이과세자는 156만8천 명으로 38.9%를 차지한다. 연간 매출액이 4천800만 원 미만인 영세 소규모 사업자의 납세편의를 위한 제도로 세금계산서 수수 면제 등을 통해 간편하게 납세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전체 사업자 중 간이과세자 비중은 2001년 48.9%로 절반에 가까웠지만 2002년 46.5%, 2003년 44.0%, 2004년 41.7% 등으로 매년 감소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그동안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의 사용 활성화 등 과표 양성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간이과세자 비율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2006.10.7. 연합통신)


여기에서 당초의 과세특례제도와 간이과세제도를 혼용하여 설명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정리하고자 한다. 즉 과세특례자(課稅特例者) 제도를 그대로 둔 채로 간이과세자(簡易課稅者)와 병행시키는 개정은 1995.12.29.에 있었으며, 그 시행일은 1996.7.1.이었다. 그리고 과세특례자를 없애고, 간이과세자만 남도록 바꾼 개정은 1999.12.28.이었으며, 그 시행은 2000.7.1.이었다. 그러므로 이들 둘이 병행시행된 기간은 1996.7.1.부터 2000.7.1.까지 만 4년간이었다. 이와 같이 원천적으로 예외에 해당하는 내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던 정확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현재로서 잘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려면, 이 제도를 쥐고 흔들었던 장본인(나중에 세제실장을 맡았던 강×× 사무관)을 소환할 도리밖에 없는 노릇임을 밝혀둔다.


이상의 논의에서 명확한 해답을 얻기는 어렵지만, 400만 명을 헤아릴 수 있는 현재의 부가가치세 납세자 중 거의 절반은 간이과세자에 해당한다. 이 간이과세자의 비중을 10% 정도로 줄이면서 90% 정도에 해당하는 납세자를 정상적인 일반과세자로 만들어야만, 우리의 부가가치세제는 명실공히 선진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국민을 확실하게 설득하는 시책을 꾸준히 펼쳐야 한다. 현재 모든 필요한 여건은 조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겨우 1천 원짜리 플라스틱 자를 사도 당연하다는 듯이 영수증을 발급하는 가게가 허다하다. 1만원도 아니되는 외식을 하면서 신용카드로 결재하는 광경을 허다히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과세자료의 노출이 잘 되는 여건에서 거래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세제를 지향하지 않고 간이과세자의 기준을 높이는 것은 인기영합적인 시책이며, 나아가서는 지하경제의 비중을 높이는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이 지하경제의 비중에 관하여 비교적 최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료로서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즉 2018년 2월에 업데이트된 것으로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한 ‘한국 지하경제 규모, GDP 대비 19.8%’라는 기사이다. 이 내용은 2015년 국제통화기금의 자료이다. 이는 과거 6년 전의 자료이지만, 비교적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6년 동안 상당한 개선이 있었다 치더라도, 2024년 현재의 지하경제 비중은 줄잡아 15% 이상이라고 추정된다. 이는 일본의 8.19%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수치이므로, 우리에게 개선의 여지가 크게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2018.2.12. 동아일보 최혜령 기자) 이러한 지하경제의 비중이 10% 이하로 줄어들어야만, 우리나라의 경제는 선진국 경제로 발돋움하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 방법은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의 폐지에서 찾아야 한다는 역시 필자의 생각이다. 


간이과세제도의 폐지가 가져올 부작용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폐지에 따라 일반과세자로 바뀌는 납세자에게 3년 정도의 시한부로 적용하는 잠정세율(暫定稅率)을 도입하여 5% 정도로 하향조정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은 결국 지하경제의 그늘에 숨는 것을 허용하다는 뜻이므로, 적정한 비율을 찾아 잠정적으로 세율을 인하적용하는 조치는 명분도 있고, 실현가능하기도 한다고 본다.


이 밖에 부가가치세의 정상화를 위하여 해당 법률을 손질할 부분도 많다. 그러나 이 글은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므로, 상세한 논의를 삼가기로 한다. 이와 관계되는 논의는 이미 필자가 다른 글(예: 월간 조세 2023년 2월호 권두언 ‘탈세 없는 선진투명세제, 부가가치세법의 획기적 개편이 답이다’)에서 밝힌 바도 있다. 그리고 지면관계상 더 이상 논의할 여지도 없음을 해량하여 주시기 바란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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