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5.31. (금)

[연재]세법·세정·세무 분야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1)

우리나라 대학 학과로서의 세무학과 출범과 그 발전 양상

 

한국세정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조세법학계 거목에게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후일담을 듣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대학 세무학과의 출범, 종합소득세제 및 부가가치세제 뒷얘기, 국립세무대학 출범과 폐지, 자료상,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세무사시험제도, 상증세, 세무행정, 지방세, 변호사와 회계사·세무사 등 조세 역사 주요 사건에 얽힌 뒷얘기를 반추하며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지향점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세무회계학 및 조세법학의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한 송쌍종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로부터 '세법·세정·세무 분야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대학 학제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하여 규모가 큰 대학을 종합대학(university)이라는 뜻으로 ‘○○대학교’라 부르고, 그 밖의 대학을 단과대학(college)이라는 의미로 ‘○○대학’이라 한다. 현재의 서울시립대학교도 필자가 1982년 11월 부임할 적에는 ‘서울시립대학’이었다. 학교의 대표는 ‘총장’이 아니라, ‘학장’이었다. 이들 4년제 대학과는 달리 전문직업교육을 위주로 하는 2년제 대학이 꽤 많았는데, ‘○○전문학교’라는 식으로 불렀다. 이 전문학교에 대하여 김영삼정부는 ‘○○전문대학’이라는 식으로 교명에 대학을 넣도록 허용하고, 또한 4년제 국립대학을 턱없이 많이 늘렸다(26개→52개(?)). 이는 시대에 역행하는 대학정책이었다. 왜냐하면 대학생의 비중이 지나치게 많아졌기 때문에 마침내는 너나없이 대학을 가야한다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며, 대학출신이 3D직업에 종사할 수는 없다는 귀족의식을 은연중에 심어줌으로써 궂은 일 분야에는 노동력 부족현상을 빚게 되었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가 상당히 많이 입국하여 일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겸하여 대학교육 전체를 하향평준의 저질화 늪에 빠지도록 한 크나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이런 대학들에서는 반정부 학생 데모가 매우 심했던 그 무렵 학생회에서는 거꾸로 대학명칭에 ‘교’자를 붙여달라고 당국에 읍소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시립대학의 경우에도 이런 시위가 있었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종합대학교가 되는 몇 가지 필요조건 가운데 대학 전체 정원의 증원을 수도권에서는 억제하면서 학과 수는 20개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시립대학에서도 학과 네 개를 갑자기 늘리려고 정원이 많은 몇 개 학과의 인원을 차출하여 새 학과를 만들기도 하고. 주야간이 모두 있는 학과 하나의 이름을 그냥 바꾸기도 했다. ‘세무학과’ 역시 주야간이 있는 회계학과의 야간을 개칭하여 문교부(현재의 교육부)의 인가를 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년 후인 1985년 초부터서야 어렵사리 교명에 ‘교’자를 넣을 수 있었다.

 

중앙대학교 4년과 한국외국어대학교 3년을 모두 ‘무역학과’ 소속교수로서 무역거래법(지금의 대외무역법)과 외국환관리법(지금의 외국환거래법) 및 관세법 등을 강의하다가 서울시립대학의 회계학과 소속으로 옮긴 필자는 세법과 세무회계 등 세무계통의 과목만을 주야로 강의하는 교수로 변신했다. 그리고 상법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임교수가 되기 전 7년간 사설학원의 세무사시험반에서 전과목을 강의하면서 이미 ‘세무회계’라는 대학교재식의 연습문제를 부록으로 붙인 이론서를 출간하였으므로, 위 변신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던 중 1983년 4월초에 당시 서울시 세정과 이을삼 과장의 연락을 받았다. 그 분은 앞으로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는데 자치세정에 필요한 세수확보를 위하여 시립인 서울시립대학에 세무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학과를 두되, 입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을 서울시가 지원하면서 매월 5만원(현재의 1백만원쯤 될 것이다)씩의 수학보조금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졸업 후에 위 지급기간의 두 배인 8년을 서울시 7급 공무원으로 의무복무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 8년을 못 채운 사람에게는 비율계산으로 장학금을 반환하는 조건을 붙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추진을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서울시장의 결재를 받아 문교부장관과 서울시립대학 학장에게 공식서한을 띄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준비된 바는 아니었지만, 법학을 공부한 덕분으로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회상된다. 얼마 후 아는 이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마침 친분이 있는 문교부장관의 직속비서관이 있다고 하면서 소개까지 해 주어 이른바 ‘로비’를 하러 갔다. 그는 즉석에서 담당과장을 구내전화로 소개했다. 한 층 아래로 내려가 그이에게 학과 설립의 필요성을 열심히 역설한 것이 로비의 전부였다. 이런 간단한 무상로비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 후 10월초에 이르러 학과 설립이 공표되었다. 

 

당시의 사립대학들은 학과 신설이나 모집정원의 증원을 위하여 학교 차원의 로비에 열을 올리던 실정이었는데, 서울시립대학 당국은 세무학과 신설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국공립대학이라 그런가보다 싶었다. 전에 봉직했던 두 대학과는 너무 딴판이라 의아심이 일 정도였다. 다만 기획과장이라는 경영학과 교수가 반색할 따름이었다. 사실은 인근 K대학교에서 지난 2년간 연속으로 세무학과 설립신청을 하였는데, 그 해는 의아스럽게도 그런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대학이 함께 신청했다면, 학과 증설을 억제하여 오던 정부로서는 둘 다 기각했거나 둘 다 인가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여하간에 대학의 학과로서 효시인 세무학과가 신설되어 1984년부터 학생모집에 들어갔다. 다른 나라의 이런 예는 없는 듯하다.

 

입학시험이 있기 전에 겨우 3개월을 남겨놓고 입시요강이 마련되었다. 학교당국으로서는 광고 한번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국의 행정기관에 배포되는 서울시 홍보자료에 세무학과 입학생 20명에게 등록금 전액 지원과 수학보조금의 지급 및 서울시공무원 8년 의무복무의 조건이 주어진다고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이 학과 입시홍보의 전부였다. 그리고 30명 모집에 20명만이 장학혜택을 받는 조건인데도, 자기 학교에서 최상위를 달리는 전국의 우수학생들이 모두 560명이나 모여들었다. 그 때는 공부는 잘하되 가난한 수재들이 서울로 유학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으며, 하물며 자동으로 서울시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지방의 시각에서 볼 적에 대단한 특혜로 여겨졌다고 생각된다. 이런 환경에서 1984년 첫 입시 때에 신설 세무학과 지망생이 전체수석을 차지하였고 커트라인도 대학 전체에서 제일 높았다.

 

이 해는 중앙일보사가 대학평가를 위하여 각 대학 입시상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2년차였다. 학과별 커트라인을 일람표로 만들어 크게 보도하였는데, 세무학과는 당연히 대학 안에서 최상위에 올라 있었다. 그 결과 명성을 계속 이으면서 학교를 대표하는 선두 학과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줄곧 전체 수석을 놓치지 않는 편이었다. 작년과 금년에도 연속으로 전체수석을 차지했다. 이런 학과의 초창기에 저학년 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필자는 여러 과목을 다양하게 강의하면서 같은 얼굴을 마주 대하는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최초 입학생이 4학년이 되고 교수가 서너 명으로 늘어나는 동안 필자는 너무 여러 과목을 다양하게 맡는 수업부담이 컸지만 나름대로 준비된 교수로서의 전성기를 맛본 셈이었다.

 

위 세무학과의 학생 수준은 이른바 ‘SKY 대학’의 경영학과보다는 좀 뒤처지기도 하고, 가정 형편이 넉넉치 못한 지방출신이 많은 편이다. 그러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업을 찾느라 세무사나 공인회계사를 노리는 국가시험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실제로 절반 이상이 이들 시험의 합격자들이다. 현재 입학정원은 배 이상 늘었지만(65명), 국가시험의 도전자는 여전히 많은 추세이다. 한마디로 위 전문자격시험의 합격자가 절반을 넘는 것이 사실이다. 간혹은 관세사나 감정평가사로 진출하는 예도 있다. 근래에는 국세공무원시험을 거쳐 일반세무직으로 진출하는 졸업생이 늘어나는 경향도 있다. 어쨌든 세무사시험 합격자가 다수인 현상 등은 위 세무학과가 세무업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전통이 당초에 20명이 등록금 등의 지원을 받는 관비학과 성격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었는가? 학과 출범시에는 위 ‘시비장학생’ 제도로 크나큰 혜택을 본 셈이었다. 그런데 3년쯤 후에 그 수는 10명으로 줄었으며, 다시 4년쯤부터는 5명으로 줄었고, 그 후 2년쯤에는 2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2년쯤에는 아예 이 제도가 없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다른 시공무원들이 줄곧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 시공무원들이 말단 9급에서 7급까지 승진하는 데에는 13년반인가의 시간이 걸리는데, 세무학과 장학생은 장학혜택을 받고서도 임명 즉시 7급(이는 당시 2년제 국립세무대학 졸업생들이 8급으로 임명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으로 출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전문교육과정을 밟는다는 차별성은 무시하면서 표피적인 평등논리만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학제도가 없어진 다음에도 학과의 위상이나 수준은 그대로 유지되어 오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서울시 세무공무원으로 활약하는 줄업생들에게서 다른 동료들과 비교하여 두 배 혹은 세 배 정도의 일처리를 해낸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현재에도 과장급으로 근무하는 졸업생이 아직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한 3년 전에는 학생 때에 시비장학생이 아니었다가 국세공무원이 된 졸업생이 국세청 산하의 인천지방국세청장으로 발탁된 예가 생긴 것을 보고 흐뭇함을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세무학과 졸업생이 조직생활에서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는 예는 거의 없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상과는 다른 각도의 얘기지만, 세무학과를 모방하여 세무학과를 창설하는 대학교의 예도 생겼다. 강남대학과 남서울대학 등이 그 예이다. 이들 대학의 경우에도 세무학과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높은 편이라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2년제 전문대학에는 ‘세무회계과’라는 학과가 꽤 많이 생겨나기도 했다(이 경우에는 ‘학’자가 들어갈 수 없다). 여기에 우리 졸업생이 교수로 부임한 예도 여럿이다(4년제 대학의 교수가 된 예도 여럿이다). 이들 세무회계과의 졸업생들은 전국에 퍼져있는 1만4천명이 넘는다는 개업세무사들의 사무실 직원으로 진출하는 예가 많은 실정이다.

 

여기에서 참고로 세무학과와 비슷하지만 학비는 전부 무료임과 동시에 기숙사에 의무적으로 무상입주를 하고 교과서까지 무료로 제공받았던 완전국비학교인 ‘국립세무대학’(2년제)의 예를 덧붙이고자 한다. 박정희정부 시절에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건의로 창설되었다고 알려진 이 국립대학은 내국세학과(200명 입학)와 관세학과(50명 입학)를 두었는데, 그 전원이 의무적으로 국세청과 관세청의 공무원으로 진출하였다. 이 호조건 때문에 전국의 우수학생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마침내는 이들 졸업생 중 세무사나 관세사로 활동하면서 현역 동료 공무원들과 건전치 못한 부조리를 꾀하기도 한다는 세평이 있기도 했다. 나중에는 4년제 대학으로 개편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실패한 바 있다. 그리고 서울시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민원에 밀려 그들 부조리를 문제삼아 국세청에 집단으로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부작용의 후유증이었다고 짐작되지만, 여하간에 이 세무대학은 김대중정부 때에 아예 폐교되고 말았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