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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07. (수)

[시론]-장님 목사님의 기적(?)-

김익래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얼마전 일요일 교회에서 장님 목사의 간증을 듣고 크게 감동받았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많은 친지들에게 장님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배우고 닦아 힘들고 어려운 많은 장애인들을 돕고 사는데 육신이 멀쩡한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신인식 목사님이시다. 먼저 그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을 요약해 본다.

 

그는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나 4살때 사고로 시력을 잃고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한계를 정하지 않고 초등학생부터 신문 배달, 전화교환원, 학교 숙직, 댄스홀 드럼 연주 등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중학교 3학년때 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들이 심한 열등감을 겪으며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장애인을 돕고 복음도 전하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8년에 한국맹인서비스센터를 설립해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일을 시작으로 시각 장애인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테이프 잡지 '사랑의 메아리'를 창간했고, 1999년에는 세계 최초의 무형도서관인 '종달새 전화도서관'을 개관해 시작장애인들이 불편없이 정보에 접근하도록 했다 한다. 종달새도서관 개관 초기에는 국내 일간지 2종과 주간지 4종을 날마다 녹음해 일반 전화로 들을 수 있도록 서비스해 오다가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현재는 국내 모든 일간지와 잡지를 비롯해 전화를 이용한 웹서핑 서비스도 하고 있음을 그의 사무실에 가서 직접 확인했다. 특허까지 받은 이 시스템은 전국 25만여명의 시작장애인 중 매일 5천여명에서 7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10년간의 기도로 최고의 아내를 얻었으며 슬하에 남매를 두고 두 자녀 모두 중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공부하는 자립적이고 용기있는 청년들로 성장했다고 한다. 두 자녀 둘 다 미 UCLA대학 졸업후 아들은 통역장교로 복무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딸은 국내 대학 로스쿨에 재학 중이라 한다.

 

그도 서울장로교 신학대학교를 졸업후 미국 페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국내D대학교 재활과학대학에서 이학박사(직업재활전공) 학위도 취득했다 한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건 웃음을 잃지 않고 주변에 긍정 바이러스를 퍼트리며 성악가 뺨치는 노래실력을 갖고 있으며 피아노, 드럼, 트럼펫 등 각종 악기도 멋지게 연주하고 있다. 그는 장님으로써 현재 목사이면서 박사이고 겸임교수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의 간증 내용에 여러가지 의문을 가졌었다. 어떻게 장님이 150호에 신문 배달을 할 수 있으며 전화교환원과 학교 숙직 등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가 자서전 식으로 쓴 '꿈꾸는 자의 무한도전'을 읽어보고 나니 이해가 됐고 그분의 현재를 보니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생각됐다. 그가 태어난 1957년부터 그가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한다. 시각장애인이라는 말 대신 맹인 혹은 장님으로 불렸는데 이유 없이 싫어하고 기피해서 아침에는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한다. 아침에 장님을 보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는 미신이 있어서 아침에는 택시를 잡을 수도 없었고, 어쩌다 택시를 잡았다 해도 시각장애인임을 알면 바로 내리라고 하거나 험한 말을 퍼붓고 침까지 뱉었다 한다. 가게에 들어가면 등을 떠밀며 소금을 뿌렸다는 시대에 살면서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꿈을 갖고 돈벌며 배우고 노력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니 참으로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분이라 생각한다.

 

그가 제공하는 종달새도서관은 국내 25만여명의 시각장애인에게 국내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과 잡지를 음성서비스로 들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고, 아침이면 신문을 펼치듯 전화로 뉴스를 들을 수 있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상인들과 동시에 알 수 있다. 시차도 없고 발췌도 없이 실시간 그대로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1년 소요예산 약 4억원 중 6천만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고 나머지는 후원금이나 목사님 강의 등 개인활동 수입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분은 아직도 가족이 함께 할 본인 주택도 없다고 한다.

 

많은 무상복지 논란이 우리 정계에 화두로 오르내리고 있는데 이러한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의 삶의 빛을 제공할 사업에 복지예산이 할애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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