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정책세미나에서 죄악세(sin tax)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장안이 좀 시끄러워졌던 해프닝이 있었다. 조세에 관해 얼마간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죄악세라는 것이 주세나 담배세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외부성을 가진 소비재에 대한 조세를 수사학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주지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법을 위악(僞惡)어법(dysphemism)이라고 한단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 특히 네티즌들 사이에서 엉뚱한 오해와 이에 따른 거친 반발이 일어나서 정치권과 정책당국이 뒷걸음질을 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용어상의 문제 때문에 객관적 논리에 따라 논의돼야 할 정책과제가 감정적 비난과 편당적 주장 속에 매몰돼 버리는 사태가 초래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정책을 논의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용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며 매우 효율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일 뿐이다.
용어야 어찌 됐든, 이야기를 꺼낸 김에 왜 주세와 담배세의 강화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몇마디하고 지나가야 속이 좀 풀릴 것 같다. 주세와 담배세 강화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첫번째 문제는 공평성 문제이다. 세부담이 역진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소비세에 비해서 주세나 담배세가 더 역진적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아직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주세와 담배세에 있어서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세부담 과다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공평성의 문제는 음주자와 비음주자 간의 혹은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의 공평성 문제이다. 음주자들이나 흡연자들이 야기하는 외부불경제요소들로, 음주운전에 의한 교통사고, 불쾌감, 환경오염 등 다양한 항목들을 들 수 있지만 공적인 건강보험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건강비용 상승과 관련된 외부효과 문제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건강이 개인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다가 내가 암에 걸리면 그것은 내가 책임질 문제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부비용에 관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건관계연구원이 수행한 연구들에 의하면 흡연과 음주의 외부비용이 주세와 담배세 수입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컨대 음주자나 흡연자는 세금을 많이 내는 애국자가 아니고 실제로는 비흡연자와 비음주자의 주머니를 상당히 축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담배세와 주세를 상당히 더 거두는 것은 이 두 그룹간의 불공평을 바로잡는 매우 정당한 조치라는 주장이 성립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주세나 담배세를 올리는 것이 과연 음주나 흡연을 줄이는 효과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술이나 담배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가격에 대해서 매우 비탄력적인 수요패턴을 갖는다. 그러므로 세금으로 음주나 흡연을 줄이려는 노력은 성공적이기 어렵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위에서 설명한 공평성의 이유 때문에 주세와 담배세의 강화는 정당화 될 수 있다. 하지만 높은 율의 주세나 담배세가 충분히 긴 기간 유지되면 음주인구나 흡연인구는 줄어든다. 높은 가격은 이미 중독된 사람들의 소비에는 제한적인 영향밖에 미치지 못하지만 아직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층에게는 매우 강력한 영향을 준다. 특히 청소년층은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청소년들이 음주나 흡연을 시작하는 연령을 높이게 되면 전체적인 음주나 흡연인구가 줄어든다. 또한 음주나 흡연의 시작 연령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높아진 상태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므로 같은 연령층에서 음주나 흡연을 시작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음주나 흡연과 관련된 선택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일종의 가부장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음주나 흡연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비용을 가격에 정확하게 반영시키는 일을 게을리 함으로써 다수의 개인들이 술이나 담배를 시작하게 되어 당사자들과 사회가 피해를 입게 된다면 그것은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근거가 된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일부 국민의 반대에 밀려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여당이나 정책당국이 올바른 정책의 추진을 포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죄악(sin)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