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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세

(7)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명환 著(前행정자치부 서기관)

2014416'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대통령이 '관피아'라는 용어까지 언급하며 '공직자 개혁'을 천명했다. 급기야 5월19일엔 눈물을 보이며 직접사과까지 했다. 

 

1999. 당시 행정자치부 허명환 서기관이 쓴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라는 책을 발간했던 한국세정신문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생성된 작금의 현상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과 함께 감회가 새롭다.

 

어느 정권이든 '공직개혁'을 시도 하지 않은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형참사 앞에 또다시 '공직개혁'을 운위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책이 나온 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라는 '촌철살인'을 그동안 우리는 왜 뼈 아프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기(放棄)했던가.

 

공무원은 근본적으로 똑똑하고 유능하다. 그런데 그 유능한 공무원 중 극히 일부만이라도 국민이 맡겨 준 의무를 성실히 이행 하지 않거나 부정한 곳으로 눈을 돌릴 경우, 그 폐해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이 번 '세월호 참사'에서 똑똑히 보았다.

 

부처를 통폐합하고, 기관명칭을 바꾸거나, 기구를 새로 만든다고 해서 공직개혁이 다 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공직DNA가 바뀌지 않는한 또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이 메시지 속에 '바람직한 공직DNA는 무엇이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녹아있다. 공직개혁을 격려하고 성공을 바라는 의미에서 본서를 연재한다.  

 

*2014년 5월19일부터 3(--) 연재될 예정입니다. 집필당시의 용어-배경 등이 현재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바랍니다.

 

<편집자 주>

 

 

-예쁜 보고서-

 

유별난 한국 공무원의 보고서 꾸미기

 

미국에서 차츰차츰 그네들 학문하는 방식과 사고의 틀에 익숙해져 가다 보면 갓 유학 나온 한국 공무원들이 내는 보고서에서 한가로운 여유와 낭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통상 초창기에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3~4쪽짜리 리포트를 만들어 제출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한국 사례나 한국 경험을 제 아무리 열심히 써 내려가 보았자 엄존하는 영어 문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공무원들은 일단 어렵사리 보고서 내용을 완성하였다 하더라도 보고서 서식을 또 따진다. 그러다 보니 완성된 보고서는 참으로 공을 많이 들인 예쁜(?) 물건이 된다.

 

어떤 공무원은  아예 한국에서부터 가져왔는지 띠지 (일명 ‘아첨지’라고 한다)까지 붙이는 것도 보았다. 대단한 정성이다.

 

이렇게 해서 턱 보고서를 내면 자연스럽게 다른 학생들 보고서와는 달리 튀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미국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보다 한국 공무원들이 낸 보고서는 유별스럽다.

 

한편의 보고서 내에서 글자 크기만도 몇 종류가 쓰인다. 보고서 제목, 각 단락을 나타내는 소제목, 그리고 본문 내용의 글자크기가 다르다. 최소 글자 크기는 12~14포인트이며, 또한 이들 글자 크기에 따라 글꼴이 달라지기도 한다.

 

문장 간격도 보기 좋고 분량도 쉽게 채워 나갈 수 있도록 2배 간격으로 하고 전체적으로 문단도 반듯하게 배치를 시킨다. 문단 끝이 쪽을 넘어가기라도 하면 문장을 늘렸다 줄였다 해서 꼭 쪽과 일치시킨다.

 

그렇게 해서 3~4쪽 분량 보고서를 만들어 내도 미국 교수가 보기에는 보고서의 핵심이 없거나, 있어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거나, 핵심만 이야기한다면 한 두 문장이면 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보고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내용이 우선이지 보고서 서식이 예쁘다 해서 혹은 띠지를 붙였다 해서 점수를 더 줄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러는지 이해조차 못한다.

 

이들 사고방식으로 보고서란 쓸데없이 길 필요가 없다. 늘리고 줄여서 보고서의 전체적인 틀을 예쁘게 한다는 개념이란 애시 당초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론이 첫줄부터 곧바로 나오기를 원한다. 아주 직설적이다. 10포인트 글자 크기에, 문장 간격은 1배로 하여 자기의 주장을 곧바로 써 내려 가는 것이다

 

도입부에 보고 내용과 인과 관계가 약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먼저 허두로 꺼내는 그런 보고서는 여지없이 무시된다.

 

보고서란 보고하고자 하는 핵심을 간결하게 전달하고, 그 논리적 근거를 정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족하다.

 

글자 크기 글꼴, 틀, 줄 수를 맞추는 것은 결코 주된 목표가 아니다. 특히나 파란 띠지란 보고서 내용과는 전혀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미국 문화는 상X들 문화라 매도하고는 우리식을 고집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예쁜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죽여 나가는 숱한 이면지 호치키스 띠지관련 직원들이 들이는 엄청난 시간노력 등 인적 물적 자원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미국도 레드 테이프(red tape)가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보편화되고 유별난 건 아니다. 게다가 이런 게 미국에 있다고 우리도 있어야 된다는 건 아니다. 특히나 전자 결재 때에는 미국, 한국 구분할 것 없이 똑같이 이런 것들은 전혀 영양가 없는 도로(徒勞)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변해야 산다”는 구호는 연찬회 등 무슨 행사 때나 한번 끄집어내 써보고는 다시 제자리에 두는 장식용 수사(修辭)가 아니다.

 

“나는 그런 걸 자~알 아는데 윗사람이 물정 모르고 그런 걸 싫어하니까 못한다”라며 미적지근한 행태를 보이는 사이에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공무원 모두는 스스로 비효율을 깨지 못하는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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