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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12. (월)

[시론]-조세와 공공요금- 성명재(조세연구원연구위원)

 일전에 정부에서는 전기료를 포함해 민생요금이라고 불리는 각종 공공요금 인상을 예고한 바 있다.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경기회복 기미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계층도 많다. 특히 그들에게는 공공요금 인상 소식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던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예상보다 둔화될 것으로 전망돼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는 등 제반 경제여건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부담이다.
 공공요금은 전기료, 수도료, 버스·지하철 요금 등과 같이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서 지불하는 요금이다. 특정한 반대급부에 대한 명시적인 약속 없이 정부의 재정활동을 위해 징수되는 조세와는 성격상 확연하게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은 종종 공공요금을 세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전기나 수도 사용에 대한 대가 형식으로 지불하는 전기사용료, 수도사용료 등을 흔히 전기세(稅), 수도세(稅)로 부르곤 한다. 물론 한자어로는 사용료의 의미를 지니는 貰를 사용하는 것이 맞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의미하는 稅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요금을 인상한다고 하면 국민들 대부분이 이를 세금의 인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요금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이웃인 일본이나 구미 선진국을 여행해 본 분들께서는 다 아시다시피 외국의 대중교통 요금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전기요금과 수도요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매우 저렴하다.
 공공요금을 낮게 책정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민생안정, 즉 서민·빈곤층 지원 때문이다. 물론 명시적으로 정부에서 민생 안정을 위해 공공요금을 낮게 책정해야 한다고 천명한 적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공공요금은 싸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어 정책당국도 매년 공공요금 인상률을 최대한 억제하는 정책기조를 견지해 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복지제도가 잘 정비돼 있고 빈민대책이 잘 집행되고 있는 서구선진국에서는 공공요금이 현실화돼 있다.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격이 높다. 이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먼저 저소득·빈곤층 지원수단으로서 가격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대체로 비용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일견 공공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것은 저소득층 부담 완화에 효과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원가에 근접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공급하는 경우 가장 크게 혜택을 누리는 계층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고소득층이다. 대다수의 중산층들도 부담능력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지불능력에 맞춰 가격이 낮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저렴한 공공요금 정책기조를 지속적으로 견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커다란 재정부담을 떠안아야 함을 의미한다. 재정부담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문의 재원을 전용하거나 증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조세가 국민경제의 자원배분을 왜곡한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세금을 100원 거둔다고 할 때 세금징수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100원에 추가해 30원 정도의 초과부담이 발생한다고 한다. 100원의 재정소요가 추가로 발생하면 초과비용을 포함해 약 130원 정도의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낭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증세분 100원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 30원의 초과부담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조세의 초과부담 문제를 고려한다면 재정지출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국한해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세금은 긴요한 재정소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으로 징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공공요금 정책방향은 어떻게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가? 저요금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저소득층이 아닌 만큼 과도한 재정 지출을 통한 사회적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는 공공요금을 현실화함으로써 초과재정수요로 인한 증세 요인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때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저소득층의 부담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이는 가격정책 대신 소득 지원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소득층에 지원됐던 혜택을 과감히 요금으로 환수하고 저소득층의 증가된 부담을 상쇄할 수 있도록 소득지원 규모를 확대해 주면 된다. 계층별 소득 분포를 고려할 때 고소득층으로부터 환수하게 되는 재원이 저소득층 지원규모를 크게 초과한다. 따라서 환수재원 중 일부를 소득지원 재원으로 전환하면 재정소요도 줄이고, 저소득층 지원을 통해 추가적인 부담 증가 없이 형평도 제고할 수 있다. 아울러 공공요금 현실화를 통해 공기업의 부실화도 방지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장점으로 인해 복지선진국들도 공공요금을 현실화하면서 가격정책을 지양하며 소득지원정책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의 경험을 살려 합리적인 방향에서 공공요금 정책기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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