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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6. (금)

[시론]조세저항을 생각하면서

안창남 교수(강남대)

사회구성원인 인간이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논리적인 근거로서 프랑스 사상가인 쟝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를 들 수 있다. 그는 그의 저서인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에서 '우리 모두는 일반의지라는 최고의 명령 아래 공동으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의 개인이 된다. 따라서 사람은 자유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는 자기의 자유를 포기한 대가로 자기 자신이 속한 사회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얘기이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홉스가 말한 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만이 존재할 뿐일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기가 갖고 있는 고유한 몇가지 권리를 버리고, 그 대신 사회의 안정을 얻게 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사유재산권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한 결과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논리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1979년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키는 주된 이론적인 근거가 됐다. 즉, 왕이나 절대군주가 사회 구성의 '알파'와 '오메가'가 아니라, 시민이 자기 자신의 권리를 유보한 대가로 형성한 것이 사회이므로, 사회의 주인은 결국 시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역사가 바로 이 프랑스 대혁명에서 시작됐다고 하는 것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금의 눈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보면 가히 환상적이다. 1789년에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3조에서는 '조세는 모든 시민에게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부과돼야 한다'는 조세공평주의를 선언하고 있고, 제14조에서 '모든 시민은 그 자신 또는 그의 대표자에 의해서 조세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이를 자유로이 승인하며 그 용도를 감시하고 그 할당액·과세표준·징수기간을 결정하는 권리를 갖는다'는 이른바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원칙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현대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얼마만큼의 세금을 부담해야 하나? 인간의 경제행태는 <소득^소비+재산(저축+부동산)>이라는 공식으로 정리될 수 있다. 여기서 소득에 대해 과세의 초점을 둘 것인가, 소비 또는 재산에 둘 것인가는 그 당시의 정치권력의 의지나 철학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세금과 치열하게 맞서 싸운 정부는 박정희, 노무현정부로 생각된다.

 

먼저 박정희 정부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재원 마련의 수단으로서 소득세와 소비세를 동시에 증가시키는 전무후무한 작업을 했다. 즉, 종합소득세제를 도입해서 소득세 세입을 확대했고,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해서 거래의 투명화를 통한 소비세의 증가를 꾀했던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엄청난 사회적 저항이 있을 법 했지만, 그 당시는 워낙(?) 행정권이 강했던 시절이어서 외관상으로는 무사히 정착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 저항이 안으로 스며들어서 박정희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던 자영사업자들이 등을 돌리게 됐고, 이는 부마사태의 원인 중의 하나이었으며, 이 사태가 결국 10·26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과 힘들게 싸운 정부이다. 즉, 부동산을 투기로 보는 시각이 강했던 것 같다. 부동산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한 양도소득세의 중과세 정책이나 부동산을 보유한 것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제의 도입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세제정책은 이른바 우리나라 '주류'세력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됐고, 집권기간 내내 그리고 퇴임 이후에도 주류세력과의 갈등을 불러 일으켰던 요인 중의 하나임은 분명할 것이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경제살리기'로 집약되는 목표를 향해서 증세보다는 감세정책을 펴고 있어서 이전의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감세는 결국 국가 채무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은 명약관화한데, 내가 납부하는 세금이 줄어들고 있으니, 내놓고 감세정책을 반대하는 흐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일시적인 감세정책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안심하고 있어도 될까? 부채는 내가 갚지 아니하면 내 자손이 갚아야 되는 것이다. 이를 갚지 못하면 결국 나라의 존재도 확실하지 않게 된다. 그 좋은 예가 1907년 대구에서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이 아닌가.

 

선진국의 소득세 및 법인세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가 과연 몇 나라나 되는가? 그리고 EU 국가 중 부가가치세 세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과연 있기나 한가? 영국이나 미국 등은 고소득자에 대해 오히려 세금부담을 높이고 있다. 좋은 예가 박지성 선수이다. 현재는 소득세율이 42%인데, 영국 정부가 경제살리기라는 명목으로 고소득자에 대한 중과정책을 편 결과 이제는 50%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구단과 세금 증가분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인가에 논의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소득자에 대해서 세부담을 낮춰주고 있다. 어느 정책이 경제살리기에 적합했는지는 2∼3년 뒤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본시 인간이 '흔쾌히' 세금을 자기가 부담할 것보다 더 내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박정희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나름대로'의 사상과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소득세와 소비세를 증액하는 정책 또는 재산세를 중과하는 정책은 조세이론상으로는 흠을 잡을 데가 없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종합부동산세와 관련된 헌법재판소의 견해도 종합부동산세 자체에 대해서는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인 인간은 그와 같은 명제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반응하지 않는다. 박정희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는 옳은 방향이었지만,  그 시대의 사회구성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일 수도 있다. 중학생에게 대학교 수학시험문제를 풀어라고 하는 것과 유사했다고 한다면 무리한 생각일까? 따라서 조세정책을 수립할 때, 이와 같은 사회구성원인 인간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세금부담의 상한선을 둬서, 법이 정한 소득세와 재산세의 부담액이 납세자 소득액의 일정액 이상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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