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직장인 K씨는 경찰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고 매우 놀랐다. 파일 공유프로그램인 토렌트를 통해 무협지 파일을 내려받은 것 때문에 고소를 당한 것이다
고소를 한 무협작가는 K씨와의 통화에서 합의금 200만원을 요구했다. K씨가 생활이 어렵다며 사정하자 100만원까지 '할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A씨는 무협지 묶음 파일을 토렌트를 통해 받았다가 지난 몇 달 동안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A씨는 총 6차례 고소를 당하면서 직장과 생활이 파탄 날 지경에 몰렸다.
저작권 침해 고소 한 건이 들어와 고소인과 합의를 보거나 벌금을 내고 마무리되면 다시 다른 작가가 고소했다며 연락해왔다. 파일 하나에 포함된 작품마다 개별적으로 고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합의금을 노린 저작권 관련 고소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의 권리와 저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작권법이 '친고죄'라는 점을 이용해 수백 건 이상의 고소가 남발되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주로 대형 법무법인이 저작권 사냥에 나섰다. 전문가가 나서는 만큼 규모도 컸고, 피고소인 입장에서 다소 가혹하게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실시간 감시를 통해 불법 다운로드를 발견하면 무차별적으로 고소장을 보낸 뒤, 합의금 200만~500만원을 요구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이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전남 담양군의 한 고등학생이 인터넷에서 소설을 내려받은 뒤, 저작권 소송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저작권 사냥, 요즘에는 어떻게 진행되나
최근에는 작가들이 법무법인을 끼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직접 저작권 사냥에 나서는 추세다. 고소 남발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회문제로 인식되자 대형 법무법인이 뒤로 빠진 것이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집중적으로 저작권 관련 고소를 하는 작가는 10여 명 선이다. 수는 많지 않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들이 1년간 1인당 1000여 건 이상 고소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협지 여러 편을 히트시킨 인기 작가 김모씨는 대표적인 '헤비 고소러'다. 수년간 매년 1000여 건의 저작권 관련 고소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6월까지 불과 7개월 동안 이미 총 676건의 소를 제기한 상태다. 하루 2~3건씩 고소를 해온 셈이다.
각 경찰서에서 30건 이상의 고소만 취합해 경찰청에 보고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씨의 고소 건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전화를 걸어온 피고소인에게 "30년 이상 작가생활을 해왔으니 합의금 300만원을 받아야겠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저작권 침해 관련 피고소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김씨 외에도 무협작가 노모, 박모씨 등이 수년간 수천 건 이상 고소를 해온 '헤비 고소러'로 꼽힌다.
과거에는 특정 경찰서에 택배로 고소장 수백 건을 한꺼번에 접수하는 일이 잦았다. 한때 서울 마포경찰서 등에 수천 건의 '고소장 폭탄'이 배달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런 방식이 담당 경찰관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을 알게 된 뒤 작가들이 방법을 바꿨다. 현재는 30건 정도씩 묶어서 전국 경찰서로 나눠 발송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30건 이상의 같은 종류의 고소가 접수될 경우 경찰청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는 점을 '배려'해 정확히 고소장을 30개씩 묶어서 고소장을 보내는 작가도 있다.
뉴시스는 김씨의 뜻을 듣기위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기자임을 밝히자 "취재 안 한다"고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ㅇㅇ경찰서인데요"…고소장이 접수되면 어떤 일이?
" ㅇㅇ경찰서인데요"라는 고소장 접수 전화를 받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형사 고소 단계에서 합의금을 주고 종결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민사소송으로 이어진다. 애초부터 돈을 노린 고소이기 때문에 당연한 순서라고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형사 단계에서의 합의금을 100만~200만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작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피고소인의 나이와 직업 유무 등에 따라 달라진다.
합의에 실패해 민사소송으로 넘어가게 되면 작가는 2010만원 정도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관례다. 현행법상 소액 민사소송의 기준은 2000만원 이하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무협지 권당 200만원 정도를 책정한 뒤 정신적 피해, 지명도 등을 고려했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소액 민사소송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서 보상금액은 150만원 수준에서 정해지고 있다. 작가가 입은 피해 정도, 저작권 침해의 적극성 정도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피고소인이 법원이 요구하는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고 출석조차 하지 않은 경우 액수가 크게 올라갈 수 있다.
◇저작권 대량고소 왜?… 대책은?
이렇듯 무협작가들이 '저작권 사냥'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 도무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명한 불법다운로드의 천국인 데다가 무협지 시장 자체도 크게 위축된 상태다.
과거 이 시장은 도서대여점을 통해 근근이 연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택가 골목길마다 있던 도서대여점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무협지를 돈 주고 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졌다.
또 소위 '양판소'라고 불리는 수준 낮은 작품들을 마구 쏟아낸 것도 시장 위기를 초래했다. 이 때문에 일부 작가가 '저작권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대량 고소에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도 넘은 저작권 사냥이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잦아지자 국회와 경찰 등 당국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단 경찰은 초범인 청소년일 경우 한차례에 한해 저작권법 관련 고소를 '각하'하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성인일 경우 저작권법 관련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해준다.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방식으로 법의 맹점을 비켜가는 셈이다.
국회에서는 저작권 침해를 상습적으로 저질렀거나 침해 규모가 6개월에 100만 원 이상일 때만 형사처분하고, 비친고죄 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저작권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상습적으로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형사 단계에서는 최대한 선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뒤 "촛대 하나를 훔친 죄로 수십 년 징역을 살은 장발장 신세를 면하게 해주려는 조치이지만, 민사 소송까지 막을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작가들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하지만, 더 수익이 되니까 이렇게 대량 고소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대량고소를 줄이는 방향, 선의의 피해자 장발장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