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務行政을 악역(惡役)으로 혹사하지 말라

2000.06.01 00:00:00

최명근(崔明根) 경희대 교수


헌법재판소가 학원의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 중 과외교습를 금지하고 이에 위반한 자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 사회는 고액과외를 금지하는 대책수립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정부는 고심 끝에 우선 이에 대응하는 지엽적인 대응조치를 발표했다. 임기응변적인 그 대책 중에는 자녀에게 고액과외를 시킨 학부모에 대하여 세무조사 내지 세무사찰을 하도록 국세청에 통보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고액과외가 국민계층간 위화감을 심화시키면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데 공감하며, 이를 억제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도 이론(異論)이 없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방법에는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고액과외가 만연되는 근본원인은 그간 교육부 주도로 추진해 온 입시제도가 전국의 대학을 1등에서부터 1백등까지 한 줄로 세워 놓고 서열(序列)을 매긴 데 있는 것이다. 학력고사 또는 수능시험 몇 점이면 어느 대학 무슨 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대학에 대한 서열적 자리매김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대학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백화점식 학과증설에만 경쟁하고 있어서 대학간의 특성적 차별이 전혀 없다.

그저 수능점수에 의한 서열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오로지 학벌만인 우리 사회에서 누가 자녀를 서열 1위에 있는 대학에 진학시키고 싶어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울대학이 존재하는 한 고액과외도 존재한다. 학벌이라고 하는 패거리에 끼어야 출세가 가능한 사회인 한 세무사찰을 한다고 위협해도 고액과외는 없어지지 아니한다.

정부는 고액과외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계기로 그 원인을 규명하면서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작업을 착수해야 옳다. 역대 정권마다 그 화려한 이름의 교육개혁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여기에서 제시한 청사진은 현실성 없이 빗나가거나 실현에 실패했다. 국민의 정부도 역시 이러한 청사진은 내놓지 아니하고 세무조사 내지 세무사찰이라고 하는 얄팍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솔직히 이러한 위협은 원초적으로 대책이라는 명사를 붙일 수 없는 치졸한 발상이다.

세금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라. 세금이 처벌하기 위해 사용하는 국민 패는 막대기인가? 정부당국에 몸을 담은 사람이 헌법도 한번 읽어보지 아니했단 말인가? 정부 당국자의 발상대로라면 세금을 납부한 사람은 모두 죄인이어서 막대기로 얻어맞은 불명예인 꼴이다. 이는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 온 사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조세를 문명을 위하여 지급하는 대가라고 말한 미국의 Holmes 대법관이 지금도 살아서 이 대책의 발표를 들었다면 아마 까무러쳤을 것이다.

세금은 자유의 대가인 동시에 국가 구성원의 신성한 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을 정직하게 많이 납부한 사람에게 우리는 훈장을 수여한다. 세무조사는 그러한 납세의무의 성립 여부를 사후에 확인하는 행정절차이며, 그러한 절차에서는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대우하면서 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이것이 법치세정이다. 따라서 고액과외를 했다는 것 자체가 적법한 세무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 요건이 될 수 없다. 즉, 고액과외를 이유로 한 세무조사권의 발동은 그 자체가 권력의 남용이 되는 것이다. 위법을 막기 위해서 정부는 위법을 저질러도 좋다는 것인가? 너무 상식 이하이다.

세무사찰은 조세포탈이라고 하는 범칙행위를 인지했을 때 발동되는 범칙조사권(범죄수사권)이다. 법은 그 남용을 막기 위하여 원칙적으로 법관의 영장을 필요로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자녀에게 고액과외를 시킨 행위는 조세포탈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국세청으로 하여금 범칙조사권을 발동하도록 한다는 말인가?

세무행정을 악역(惡役)의 대역(代役)으로 활용한 것은 국민의 정부만은 아니다. 5·16 군사정권이후 역대 정권이 모두 악역의 대역배우로 세무행정을 이용해 왔다. 오늘날 국민들의 납세의식이 이와 같이 산성화된 일부 원인은 몰지각한 일부 정치인 및 고급관료가 세무행정을 악역배우쯤으로 여겨 온 데 있다고 단언적으로 진단한다.

지금 우리는 개혁을 표방하고 있다. 세무행정을 본연의 자세에서 법이 명령하는대로 그의 임무만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아 주는 것도 개혁이다. 세무행정이 제자리에 있을 때 그 행정을 민주화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봉사행정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본다. 세무행정을 악역배우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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