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나이와 생각의 나이

2000.04.20 00:00:00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解官 6조편에 `기관여사'와 `석거지절'이란 말이 있다.
기관여사는 벼슬 버리기를 헌신짝처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자리가 갈릴 경우 얼굴에 슬픈 빛을 나타내며 당황해 허둥지둥한다면 이는 참으로 수치스런 일이며 아전이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조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에 文簿를 잘 정리해 두어 그 이튿날 홀연히 떠나가는 것이 맑은 목민관의 풍도(風度)라고 茶山은 적고 있다.

석거지절은 목민관의 떠남을 못내 아쉬워하는 백성들의 애석한 마음을 말한다. 이 경우에 목민관의 가는 길을 막고 그 유임을 원하기도 하며 임금은 백성의 청원을 들어 이를 허락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오래 임무를 맡겨서 백성을 편안케 하였거나 혹 이미 늙었어도 부득이 유임시켜 오직 민의를 따르고 법에 구애되지 않는 것도 세상을 다스리는 선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벼슬이 갈릴 경우 목민관이 취할 자세와 행동, 그리고 유임에 대한 방법도 말하고 있다.

○…최근 국세청 내부에서 명예퇴직 문제로 또 다시 설왕설래하고 있다. 혹자는 `기관여사' 같은 논리를 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석거지절'의 원류(願留)를 표하기도 한다. 이미 지난 3월말 명퇴자 정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연말 명퇴 대상에 대한 언급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당사자들은 적잖이 당황해 할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비록 예년과 다르게 조기에 연말 명퇴 대상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물론 어떤 타당한 연유가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명예퇴직제는 법으로 규정된 제도이며 그 취지와 배경에 대해서도 우린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명퇴제에 대한 부정적 반론은 그 시행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불거져 나오고 있다.

○…지금 국세청은 대 세무서 조직으로의 개편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고 MBO(목표관리제) 경영기법을 도입해 행정 업무성과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대 세무서 조직으로의 개편이나 MBO 경영기법 모두 행정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정해진 연령대상자들만에 대해 그 행정목표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에는 무리가 없지 않다. `생각의 나이'를 반영하고 석거지절하는 목민관에 대한 존재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발상도 해 봄 직하다. 매년 매기마다 명퇴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서로간에 불편한 심기가 노출되기도 한다. 牧民心書에 적고 있듯, 기관여사한 목민관에 대해 백성들이 석거지절한 마음을 표한다면 이를 헤아려 유임을 허락하는 방편도 일견 유익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형길 기획출판부장 chg@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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