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내 (金翼來) 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서양 사람들이 즐겨 쓰는 속담 중에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확실하게 찾아오는 것은 죽음과 세금이다' 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죽음과 세금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서양 사람들의 납세의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금이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서양사회에서 탈세는 가장 비난받는 범죄행위로 다루어진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납세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민대중은 차치하고라도 국민의 대표자가 되겠다고 나선 16대 후보들의 납세실적을 보면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1천40명의 후보 중 지난 3년간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후보는 전체의 20.5%인 2백14명, 3년간 재산세를 하나도 내지 않은 후보는 33.3%인 3백47명으로 집계됐다.
더불어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무를 보아도 군대에 가지 않은 후보자가 21.6%인 2백18명, 후보자 아들이 1백57명(대상자 7백18명 중 21.8%)이었다.
어느 신문의 논설위원은 이러한 후보들의 납세실적과 병역현황을 `낯두껍기 경연대회?'라는 제목으로 “병역이나 납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의무다. 적어도 국민의 대표자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이런 시비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라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평소 정치인들은 뻔뻔하고 얼굴 두껍다고 느끼긴 했지만 총선과정에서의 행태를 보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고 힐책하고 있다.
평균연령이 4·50대인 후보들이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정당한 특별한 사유 없이 소득이 없어서 세금을 내지 못했다면 한 가정의 가장노릇도 못 한 무능력자라고 간주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금을 한푼도 납부하지 아니한 사람은 놀고 먹는 건달이거나 가장노릇도 변변하게 못 하는 무능력자 또는 기생자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치국을 하겠다고 나서는지 한 마디로 후안무치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갖가지 해명을 하고 있다.
“재야단체 정당 등에서 활동해 소득이 없다”는 후보. “당비나 동료의원에게 낸 후원금을 공제받아서 소득이 없다”는 연간 7천만원의 세비를 받는 현역의원들. “법무법인 대표로 월급을 받기 때문에 법인이 법인세를 내지만 개인소득세는 적다”는 변호사. “영등포는 성형외과가 별로 인기가 없어서 3년간 3백48만원의 세금만 냈다”는 성형외과원장. “98년 약사회회장 출마를 위해 '97년 말부터 사실상 폐업했으며 소득세 1백32만원은 '96, '97년 2년간의 납세액”이라고 하는 어느 지역 약사회장 등의 해명은 세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변명으로 들린다.
이들 이외에도 某건설회사 대표로 밝힌 某후보는 3년간 소득세 19만원, 목욕탕을 운영한다는 某후보는 3년간 소득세 81만원을 내는 등 업체대표나 자영업자 중 소득세액이 1백만원 이하인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그 동안 탈세를 한 것인지 절세의 귀재인지 알 수가 없다.
세금을 안 낸 것이 만 천하에 공개됐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지금까지 우리 나라 대부분의 국민 납세의식이 누군가가 탈세범으로 잡혔거나 추징세액이 부과되면 이에 대한 여론은 재수가 없어 희생되었다고 보거나 정치적으로 몰리고 있다고 보기 일쑤였기에 본인도 성실납세를 하지 않았다는 데 크게 반성하고 앞으로는 자진해서 성실히 세금을 내겠다고 용서를 빌면 오히려 동정표라도 얻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16대 총선부터 후보자의 납세 병역 전과가 공개된다는 것이다. 후보들의 전력이 공개된다는 자체가 17대 총선부터는 떳떳치 못한 자들의 출마를 크게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게 틀림없고, 정당들의 공천에서도 사전 검증이 좀더 철저해질 것으로 믿는다.
또한 某일간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의 납세사항을 고려하겠다는 의견이 86%나 되니 반갑고, 이제 진정으로 혈연 지연 학연의 굴레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여·야 할 것 없이 탈세자(?)가 국민대표로 선출되지 않도록 유권자가 현명하게 심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