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44)이 속눈썹을 꼿꼿이 세우고 양 볼을 붉게 물들였다. 치마를 입고 킬 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어나가기도 한다. 영화 '하이힐'(감독 장진)에서다.
차승원은 영화에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긴 채 살아온 강력계 형사 '지욱'을 연기한다.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여성성을 감추기 위해서 더욱 거칠게 행동하고 몸을 사리지 않으며 범인을 잡아왔지만, 진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차승원은 29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여장을 하면서 '서로 견뎌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첫 여장을 했을 때 '남들도 나를 어색하게 보지 않겠지?'라는 혼자만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눈썹도 밀었다. 완벽한 여장보다는 감성으로 지욱의 여성성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쁘게 화장해준 메이크업 팀에게 감사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장진(43) 감독은 "촬영스케줄이 꼬여서 차승원이 낮에 남자 장면을 찍고 여장에 들어갔다. 스태프들은 3~4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긴장하고 있었다. '절대 웃지 말자'고 서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100여 명의 스태프가 기억하는 첫 여장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마초같은 사람이 여장하고 풀메이크업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타났는데 이상했다"고 몸서리쳤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관객들에게서 실소가 나올 거로 생각했다. CG도 걱정했다. 하지만 차승원이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외피적인 걱정이 사라지고 여자를 느낄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높이 샀다.
장 감독은 데뷔한 지 20년이 되는 해 11번째 영화로 '하이힐'을 택했다. "상업영화다 보니 성 정체성이나 성적소수자를 다룬 영화는 아니다. 똑같이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 영역에서 사는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자신들의 일할 시간을 반납하고 도와주기도 했다"고 고마워했다.
"그들이 준 가장 큰 힌트는 '감독님, 내 안에 여자가 있어서 여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라는 말이다. 98%는 동성애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갑자기 동네 형이 좋아지고 그 형이 등을 만져주는 손길이 좋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친구가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고, 그래서 여자가 되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한다더라. 그 말을 듣고 시나리오의 큰 공사를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또 내가 그들의 진짜 소리를 표현했는지 평가받고 싶다."
영화 '아들'(2007) 이후 6년 만에 차승원과 재회했다. "'영화 어땠어?'라는 질문에 '차승원 멋있더라'는 말이 나온다면 이 영화를 찍은 첫 번째 이유가 실현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가 뒤따를 것 같다. 영화를 20년 찍었지만 가장 겸손한 자리에서 올려다보면서 작업한 영화다. 잘 부탁한다."
'하이힐'은 6월4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