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제10대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에 자타공인 경제전문가로 손꼽히는 조원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사진>가 취임했다.
조원동 원장은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해 경제기획원 대외경제국,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 등을 두루 거친 거시정책통이다.
그러나 조세연구원장 직은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맡은 기관장인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다른 누구보다 화려한 취임식을 거행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조 원장은 취임식을 생략하고 곧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온화하고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답게 강단에 서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일방통행식' 취임식보다는, 연구원 한명 한명을 만나 진솔하게 얘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쌍방향 소통'을 원했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왜 취임식을 개최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세연구원장은 제가 처음으로 맡은 기관장이다. 애착이 가지 않을 수 없다"며 "하지만 강단에 서서 일방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 인사하고 진솔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조세연구원이 정치논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근거와 숫자로 말하는 조세연구원 만들겠다"는 조 원장을 취임 후 한달여가 흐른 지난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소재 조세연구원 9층 사무실에서 직접 만났다.
□ 한국조세연구원장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소회는?
"저보고 거시전문가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은 거시부분뿐만 아니라 미시부분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조세연구원장 직을 맡게 돼 미시부분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봅니다.
공직에 있을 때 하지 못했던 부분을 동료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영광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 여러 기관에서 의뢰한 많은 연구용역 중 취사선택하는 것은 원장님의 몫입니다. 원장님만의 기준이 있다면?
"가급적 모든 연구용역을 수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조세연구원은 이 모든 분야를 연구할 인력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조세연구원 인력만으로는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조세연구원은 많은 펠로우(Fellow) 등 외부 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외부에서 와서 세미나를 많이 열고 있습니다.
이러한 펠로우들과 함께 연구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인력이 없어 연구를 하지 못한다는 말은 하기가 싫습니다."
□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연구원은 정치적 중립이 요구됩니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원장님께서 구상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정치적 중립 문제는) 얼마나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근거가 있느냐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근거가 있으면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없습니다.
반면 담론이나 좌담수준의 연구결과라면 정치적으로 휘둘릴 소지가 큽니다.
그러므로 연구자체가 굉장히 근거에 기초한 연구가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역점을 두고 진행할 과제가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재정패널조사를 실시해 패널DB를 구축하고, 납세자의 소득구간별 자료를 좀 더 정교하게 DB로 구축하는 등 예산사업, 조세지출, 조세수입에 대해 DB로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DB를 기초로 연구를 함으로써, 숫자와 근거로 말하는 기관이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정치적이라는 말은 사라질 것입니다."
□ MB노믹스의 핵심 중의 하나가 감세정책이었습니다. 현 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해 국책 연구기관의 장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참여정부 시절 세금폭탄이라고 비판하던 이들이 현 정부들어서는 부자감세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1년 동안 번 소득 중에서 세금으로 낸 수치인 조세부담률을 보면 참여정부시절 21%이던 것이 현 정부들어서는 19.3%로 불과 1.7%p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론은 세금폭탄에서 부자감세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다른 나라의 경우 조세부담률이 3~4%정도 바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른 나라에 비해 조세에 대한 민감도가 높습니다.
이는 세금을 내는 층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세금을 내는 층이 적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쪽은 평균 조세부담률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부담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만큼 조세구조를 형평하게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감세정책으로 조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나라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각이 됐다는 의미는 조세개혁방향을 넓은 세원구조로, 평평한 구조로 가져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GDP(국내총생산)가 1% 성장할 경우 조세수입이 1% 증가함을 의미하는 '조세탄성치'가 최근에는 1보다 적었습니다. 세원이 넓으면 조세탄성치가 1을 넘습니다.
조세탄성치가 높으며 세율은 건드리지 않아도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히 세수는 더 많이 늘어납니다.
복지세원 마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 체납세금 징수업무와 관련해 민간에 위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원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지방세는 현재 수납을 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합니다. 다수의 다른 나라의 경우 중앙징세조직이 있어 징수업무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인력만으로 지방세를 걷고 있습니다.
또한 전문성도 부족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점을 고려해 민간에 위탁하는 문제도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국세의 경우에는 국세청의 금액도 크고 징수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서 지방세보단 천천히 가야 한다고 봅니다.
징수업무는 공권력에 해당하는 만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에 위탁해 테스트를 거쳐 신중하게 가야 합니다.
또한 체납행정은 효율성과 투명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현재 총 체납액 12조7천억원 중 7조7천여억원이 결손처분을 해야 될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들고 있으면 결손처분을 하기가 힘듭니다.
받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노력도 하지 않고 결손처분을 한다는 의심의 눈이 있어 (결손처분을)결정하기가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민간에 주어졌을 때는 객관적으로 해봤는데 징수가 되지 않더라고 하면 결손처분을 결정하기가 쉬워집니다."
□ 조세연구원은 세종시 이전으로 인해 우수 인력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책이 있다면?
"조세연구원은 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청사가 없는 다른 기관에 비해 여건이 나은 편입니다.
문제는 청사를 제값 받고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좋은 가격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팔수 있다면 세종시로의 이전이 조세연구원을 한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모든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가게 돼 있고, 연구원 충원에 있어서는 경쟁관계에 있는 만큼 좋은 가격을 받는 다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현재 좋은 인력이 많이 나가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남아 있는 분들 입장에서는 언젠가 가야한다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게 유리합니다.
내려갈 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현재 제가 할 일입니다."
□ 연구위원 등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조세연구원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 환경이 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정정책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입니다.
경제학의 위기라는 말들이 많은데, 이는 다시 말해 경제정책에 거는 기대가 많다는 뜻도 됩니다.
정부가 가진 금융정책과 재정정책 중 금융정책은 유효성이 바닥이 났습니다. 예전에는 정부가 금리를 통해 목표했던 바를 이뤘지만, 지금은 금리를 낮추면 해외자본이 들어와 환율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당초 목표했던 것에 도달하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재정정책의 중용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재정수단을 쓴다고 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정정책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쓸 것인지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밖에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에 조세연구원이 부응해 주면 연구원의 위치는 한단계 올라갈 것입니다.
지금이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숫자와 근거로 정책을 건의할 수 있는 연구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조원동 조세연구원장 프로필]
▷1956년 충남 논산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박사 ▷행정고시 23회 ▷경제기획원 대외경제국 대외경제총괄과 ▷대통령 경제비서실 경제수석실 행정관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정책조정심의관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정책기획관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원회 전문위원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 ▷국무총리실 사무차장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조세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