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유가 시대의 유류세 부담

2008.06.30 09:45:50

요즘 기름값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높이 치솟고 있다. 출퇴근길에 주유소를 지나칠 때면 '오늘은 또 얼마나 올랐나?'하고 기름값이 적힌 게시판을 주시하면서 탄식섞인 한숨을 짓곤 한다.

 

IMF 위기를 갓 벗어난 즈음 정부는 에너지 세제개편을 추진했다. 차종별 연료유의 종류에 제한을 뒀던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선결조건으로 유종간에 크게 벌어져 있던 가격 격차를 현실에 맞게 축소조정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휘발유를 제외한 나머지 유종의 경우에는 저세율-저유가 정책으로 인해 소비가 적정수준을 초과하고 있었다. 따라서 환경오염과 교통혼잡의 심화 가능성을 불식시킬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유종간 가격 격차를 좁히는 방법으로는 특별소비세율과 교통세율의 조정이 적절했다.

 

만약 유종간 상대가격 격차를 축소해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에너지 세제개편이 단행되지 않았다면, 세율과 가격이 높은 휘발유에서 세율과 가격이 낮은 LPG와 경유로 대폭 소비가 이동하면서 세수의 대폭 감소, 유종간 소비구조의 급변에 따른 에너지 수급불안, 경유 소비 증가에 따른 환경오염 가중 등의 부작용도 심화됐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에너지 세제개편이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유종간 상대가격 격차를 조정하는 방법은 휘발유의 가격을 낮추거나 또는 경유, LPG의 가격을 높여 상향평준화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이 가운데 정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는 환경오염 등의 사회적 외부비용이 매우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에너지 세제개편의 결과 LPG와 경유, 특히 그 가운데 경유의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이에 따라 경유를 많이 소비하는 버스, 트럭 및 RV차량을 소유한 소비자들의 부담이 비교적 빠르게 증가했다.

 

에너지 세제개편이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세율이 인상됨에 따라 경유가격이 점차 휘발유가격에 접근하게 됐다. 경유가격 인상에 따라 2003년 화물운송 파동을 겪기도 했지만 국제유가가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2000년대 초에는 유종간 상대가격 목표(휘발유:경유^100:85)의 달성이 무난한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1∼2년간 사이에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급기야 경유가격이 휘발유가격을 추월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국제시장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유가 휘발유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그 반대의 상황이 수십년간 유지돼 왔기 때문에 가격 역전에 따른 충격과 고통은 상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세제개편 당시에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자동차 보유가 대중화되지 못했고 운송 및 산업현장에서의 화물자동차의 활용도도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따라서 유류세 부담도 대부분 고소득층이 담당했다. 소득수준에 비춰볼 때 당시의 유가는 지금보다 결코 낮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자동차 보급률이 매우 낮아 일반 대중의 고통은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또한 유류세 부담은 주로 고소득층이 지는 만큼 유류세도 사치세로서 정(+)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나타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동차 보급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동차를 보유·이용하고 있다. 유류세 부담도 중산층과 서민층까지 확대됐다. 그 결과 유류세 부담의 절대수준도 증가했고 세부담 구조도 비례적으로 바뀌면서 소득분배구조에 미치는 영향도 점차 중립적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초고유가로 인해 유류 소비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유류 소비는 다소 위축됐기 때문에 유류세 부담의 절대수준은 다소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경제력이 약한 저소득층일수록 소비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만큼 유류세 부담 분포는 오히려 종전보다 누진적인 구조로 바뀌고 있다. 고유가가 계층별 유류소비 패턴을 뒤흔들면서 유류세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다시 커지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아무도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유류세가 소득재분배 측면에서 종전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고유가로 인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유가시대를 맞이해 유류세가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 있으니 상당히 역설적이지만 그나마 다행스럽다. 유류세의 형평 효과와 시장기능을 원활히 유지함으로써 더 큰 왜곡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현재의 유류세 과세의 틀은 지속할 필요가 있다. 다만 초고유가로 인해 초래되는 고통이 극심한 만큼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세금을 통한 가격정책보다는 소득보조정책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어렵더라도 유류세의 기본체계는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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