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는 우리 국민에게 큰 상처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많은 후유증을 안겨 주고 갔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참으로 얻은 것도 많았다.
과거의 부실감사에 대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변명하는 말도 있었지만 입이 열개라도 회계사들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아닌 것을 'No!'라고 할 수 있는 감사 환경이 웬만큼 조성된 것이다.
기업의 회계분식과 부실 감사보고서는 우리의 후진성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최고로 꽃 피었다는 미국에서도 엔론사태가 터지고 세계적인 빅5 회계법인 중 하나가 하루 아침에 파산하는 것을 보니 이것은 우리의 후진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이 회계감독 시스템을 새로 짠다며 부산을 떨더니 내놓은 결과를 보면 우리 금융감독 당국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내용에서 크게 벗어난 수준은 아닌 것 같고, 우리는 또 미국 것을 보고 다시 보완한다고 하니 이 점에서만 본다면 우리가 미국보다도 선진국이다.
자본시장과 공인회계사제도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했던가.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개막된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소련이 붕괴된 직후, 후꾸야마 교수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제도는 없다는 뜻으로 '역사의 종말'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지금 분식회계가 새로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직도 자본주의가 꽃을 덜 피웠고, 더 발전할 내용이 많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제 시들기 시작하는 것인가.
영국 블레어 수상의 경제고문 기든스가 내놓은 '제3의 길'이라든지, 일부 미래를 내다보는 학자들의 자본주의의 종말이 머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양식있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라는 투기적 금융자본가들에게만 낙원인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0년 혹은 수십년이 될지, 몰락일지 아니면 변형일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자본주의는 현재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 미국에선 로마제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팍스 아메리카'에 대한 말과 글들이 쏟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공석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사석에서는 미국 국민들의 이러한 자가도취를 우려하면서 국가채무를 걱정하는 양식있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15년전에 제로였던 미국의 해외 순채무는 금년에 2조5천억달러로 GDP의 25%에 이를 전망인데, 3년안에 3조5천억달러로 GDP의 50%에 달할지도 모른다.
군사력이나 모든 면에서 사실상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국들이 현재의 판을 쉽사리 깨지는 않겠지만, 계속 눈덩이처럼 빚을 쌓아가고 있는 채무자가 채권자들을 지배하는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기업 투명성과 분식회계로 돌아와 보자. 현재 우리의 외부감사 환경은 분식회계를 용납하지 않는다. 회계사들이나 감독 당국이나 현재와 같은 의지를 계속 지켜나가기만 한다면 대체로 만족할만 하다고 본다.
내년부터는 기업회계기준서(2호부터 9호)가 새로이 적용된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는 과연 이 기준서가 회계실무를 위한 것인지, 회계학자를 위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있다. 예를 들면 사용후 원상복구가 필요한 유형자산을 취득할 때, 복구지출의 현재가치를 '복구비용추정자산'과 '복구충당부채'라는 과목으로 자산과 부채에 동시 계상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매년 적정수준의 충당금을 쌓아 나가는 현행 회계처리는 왜 안되고, 취득시에 복구비용을 자산과 부채로 계상해 부채비율을 높여야 하는지 회계학자가 아닌 필자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미국에서 도입한 첨단 이론이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쓰는 것은 반드시 좋은가.
요사이 젊은이들의 유행인 해진 청바지, 미국인들이 입던 낡은 청바지를 수입한 것이 유행이 돼 멀쩡한 국산 청바지를 일부러 해지게 만들어 입고 다닌다고 한다.
청나라가 망하고서야 사대모화(事大慕華)는 끝이 났다. 그런데 요즘 우리 나라의 사대모미(事大慕美)는 언제 끝날 것인가. 미국에 너무 혼이 뺏기지 말고 우리의 정신을 추스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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