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千여장까지 백지어음전환
고준호·박종기씨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복예(李福禮) 회장은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신규발행어음 지급보증 ▲대출 및 만기연장 등 편법적인 금융지원을 해 주겠다는 반승낙 의사로 해석했다.
李 회장은 환한 얼굴로 즉시 비밀금고에서 빳빳한 뭉치돈을 꺼내 건네며 이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기왕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와준 것 한번 화끈하게 도와 달라”며 “두 사람의 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영동진흥개발을 멋지게 키워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고 한 뒤 “당신들이 어음지급보증 만기연장 등 특별금융지원(?)을 추진하기 위해 부하직원을 포섭하는 데 필요한 접대비나 혹은 기타사항에 대해선 즉시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이들은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대부 및 당좌담당 직원 포섭에 나섰다.
박종기·고준호씨는 영동진흥개발이 건넨 秘資金으로 일과후 수시로 술자리를 마련, 포섭대상자들을 끌어들여 이복예(李福禮) 회장의 됨됨이와 기업회생 가능성을 역설하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암시했으며 헤어질 때는 반드시 교통비라는 명목의 봉투를 건네줬다.
특별한 때에는 곽근배 사장이나 담당임원이 직접 회식자리에 참석해 이들을 접대하며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복예(李福禮) 회장과 곽근배 사장은 이같은 방법으로 '80.2월부터 3년간에 걸쳐 명절 및 하계휴가 등 때마다 박종기 차장을 통해 대부담당대리 윤경구·강희창·신연기·윤경구씨, 당좌담당대리 박경남·이성도·송진수·배동엽·곽형모씨, 대부담당행원 문희양·김영호씨 등에게 수차례에 걸쳐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뇌물을 주었다.
또 고준호·서상렬·이택구씨 등으로 지점장이 바뀔 때마다 매주 혹은 매월 정기적으로 지점장실을 방문해 금융지원에 대한 사례의 뜻을 표시했다.
조흥은행 중앙지점 어음부정지급보증사건의 실무주역이라 할 수 있는 고준호씨는 이같은 공로로 매주 2백만원의 사례비와 각종 편의를 제공받아 온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로써 조흥은행 중앙지점은 사실상 영동진흥개발의 私金庫로 전락했다.
중앙지점내 영동진흥개발 지원을 위한 특별팀(?)이 만들어지자 이들은 먼저 수석차장 서랍에서 직인을 훔쳐 지점장실에서 신규발행어음을 위해 그때그때 비밀리에 사용했다.
그러나 편법지원이 장기화되고 지점내 사실상의 특별팀(?)에 합류하는 동료들이 늘어나자 이들은 대담하게도 보증용명판과 지점장명판 등 필요한 직인을 별도로 만들어 보관하면서 영동에서 요청하는 수대로 아무때나 찍어댔다.
이렇게 해서 영동의 어음장은 보증용명판 지점장명판 지점장 직인이 찍힌 은행보증 백지어음으로 둔갑해 한번에 1천여장까지 대량으로 건네졌다.
요즘 한 개 기업이 매월 거래은행으로부터 받는 어음이 10장 한 묶음과 당좌 및 가계수표 각 20매 한 묶음임을 감안하면 당시 이들의 비리행위가 얼마나 대담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영동은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중앙은행 중앙지점장이나 당좌담당대리 등 직원에게 연락해 2~3천만원짜리 어음을 만들어 명동에 나가 이재식·윤문섭씨 등 사채중개인을 통해 어음을 할인해 만기가 도래한 어음을 결제하거나 물품대금 등을 지급했다.
이제 남은 일은 당좌담당대리들이 어음을 결제하는 것 뿐이었다.
영동진흥개발계좌에 어음을 결제할 만한 잔고가 있을 때는 만기 도래된 어음이 제시되는 대로 결제해 주고 영동측으로부터 그 액수만큼의 당좌수표를 가져오도록 했다.
또 회수된 어음은 찢어버리고 이를 당좌거래로 위장해 감사 등에 대비했다.
그러나 잔고가 비었거나 부족한 경우에는 당좌담당대리들은 직접 영동진흥개발로 하여금 당좌거래를 하는 다른 은행의 당좌수표를 부족액만큼 발행해 가져오도록 하고 그 액수만큼 중앙지점의 당좌수표를 발행해 그 은행에 입금시키는 등 회계담당 직원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