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진흥개발이 수십억원을 들여 인천에 지은 대단위 아파트분양 참패는 이제 막 성장가도에 진입하려는 이복예(李福禮) 회장의 사업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영동진흥개발은 이미 '74년 역삼동 679번지 테헤란노(現 LG그룹 강남사옥 부지)에 반도유스호스텔을 지으면서 20여억원의 빚을 지고 있었으며 雪上加霜으로 호텔영업마저 부진해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동진흥개발은 아파트 건설에 묶인 거액의 회사자금을 융통하고자 대우건설과 긴급 매각협상을 벌여 미분양 아파트 전체를 대우건설에 넘기는 데는 가까스로 결정을 보았으나 이 과정에서 70여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부채가 추가로 발생했다.
또 이복예(李福禮) 회장 사업 母胎인 온양 제일여관을 제일호텔로 확장하면서 40여억원의 부채가 늘어나 가뜩이나 어려운 영동진흥개발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다.
상황이 이처럼 하루아침에 악화된 것은 부동산 투자실패와 무리한 사업확장 이외에도 당시의 후진적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제도금융권내에서 사업자금을 모두 조달하지 못하고 명동 사채시장에서 高利의 사채를 빌려쓴 게 결정적이었다.
더구나 이철희·장영자 사건과 명성그룹사건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연루된 잇따른 대형 경제사건으로 군부정권의 도덕성·정통성이 크게 손상돼 인플레가 발생, 利子부담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1백10여억원이 넘는 부채로 인한 이자부담으로 인해 계속 진행중인 아파트, 상가 건설이 차질을 빚으면서 분양에도 적지않은 시행착오가 발생해 자금난을 가중시켰다.
이와함께 당시 소득수준 향상과 새로운 관광지 개발로 인해 이복예(李福禮) 회장이 야심차게 지은 반도유스호스텔과 온양 제일호텔 의 영업실적마저 부진해 李 회장 一家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영동진흥개발그룹은 궁여지책으로 아파트나 상가분양 신청대금이나 중도금을 어음을 막는데 전용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으나 하루하루가 숨막히는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사채업자를 비롯한 錢主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사무실에 진을 치고 앉아 貸金 상환을 요구하는 등 소란을 피워 정상적인 업무진행조차 어려운 지경이었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일로를 치닫자 이복예(李福禮)는 계열사 거래은행 지점장을 비롯한 금융계 주변인사를 찾아가 만기도래된 어음의 ▲만기연장 ▲대출연장 ▲어음지급보증 ▲긴급당좌대월 등 자금지원을 호소하는 게 주업무로 변해 버렸다.
그러던 '80.2월 어느날 이복예(李福禮) 회장은 그랜드호텔 주거래 은행인 조흥은행 중앙지점의 고준호 지점장과 박종기 차장을 회장실로 긴급히 불렀다.
그랜드호텔 경영시절부터 알게 된 고준호 지점장과 박종기차장과는 떡값을 비롯한 각종 금품을 수시 제공한 대가로 이미 오래전부터 어음 만기연장 등 각종 금융편의를 제공받아 온 절친한(?) 사이였다.
이복예(李福禮) 회장은 어떻게 자금을 좋은 조건으로 융통할 수 없겠느냐며 매달렸다. 또한 영동진흥개발이 만의 하나 부도처리될 경우, 그동안 편법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그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공갈협박이 오갔음도 물론이다.
고준호 지점장과 박종기 차장은 수시로 회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공갈까지 곁들이는 李 회장의 태도에 마음은 언짢았으나 이미 자신들이 손을 떼기에는 너무나 많은 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차제에 이들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영동진흥개발을 적극 도와주는 대가로 자신들의 잇속도 차리기로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李 회장으로부터 금융편의제공시 돌아올 대가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난 高 지점장과 朴 차장이 마침내 결심한 듯이 대답했다.
“회장님 좋은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그게 편법이고 많은 위험이 따르는 것이라 선뜻….”
두사람의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복예(李福禮) 회장이 벌떡 일어서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