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비화 -〈8〉영동진흥개발사건-②

1999.12.27 00:00:00

아파트건설로 큰 빚…사업기반 `흔들'

정·재계인사 사업확장 밑거름

先代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나 체계적 경영수업 없이 13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영동진흥개발그룹을 일으킨 이복예(李福禮)씨가 걸어온 삶은 해방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自手成家 기업의 전형인 모습이었다.

이복예(李福禮)씨가 장사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6·25직후 충청남도 온양에서 `제일장'이란 여관을 경영하면서부터.

당시 충남 온양은 우리나라 제일의 온천휴양지이자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인 까닭에 1년내내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특히 자유당 이기붕씨와 야당의 거물인 조병옥씨 등 정계실력자와 財界인사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가장 즐겨찾는 휴양지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장은 온양 온천의 원탕으로 소문나 사시사철 투숙객이 밀려들었으며 특히 이 여관에서 끓여주는 시원한 해장국은 저명인사들의 입맛을 돋워 미식가들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다고 한다.

또 정·재계 인사들을 비롯한 각계의 유명인사들과 자연스럽게 깊은 교분을 쌓은 것은 그녀가 사업을 확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李씨는 20여년간 착실히 쌓은 재력을 바탕으로 70년대초 마침내 서울에 진출, S그룹 趙모회장으로부터 그랜드호텔을 임대해 경영하기 시작했다.

李씨는 제일장 경영수완을 바탕으로 북창동에 소재한 그랜드호텔(現 흥국생명보험주식회사 本社 사옥) 경영에도 수완을 발휘해 많은 재산을 축적, 알부자로 주위에 소문이 자자했다.
한번 불붙기 시작한 사업욕심은 이때부터 본격화되었고 李씨 주변에는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李씨는 점차 주변사람들의 권유와 그동안 사업수완을 과신해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했다.
李씨는 '73년, 그동안 강력히 추진돼 온 경제개발정책에 힘입어 부동산경기가 활성화되고 아파트 건설붐이 일자 영동(주)을 설립, 본격적인 택지개발 및 아파트건설 대열에 참여했다.

또한 '74년에는 개발붐이 일기 시작한 강남구 역삼동 679번지의 테헤란路에서 반도유스호스텔 신축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好事多魔라고 할까.
그동안 손대는 사업마다 크게 번창해 큰 돈을 벌었던 李 사장도 자금조달이 제때 안 돼 반도유스호스텔을 지으면서 20여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
雪上加霜으로 온양의 제일장을 제일호텔로 확장하면서 40여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

또한 영동이 수십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인천에 지은 아파트의 분양실적이 저조해 이를 대우에 헐값으로 매각하면서 7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빚을 추가로 떠안게 돼 李씨의 그랜드호텔과 온양 제일호텔, 영동은 하루 아침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사업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李씨는 매일매일 사무실에 진을 치고 앉아 채무이행을 요구하는 채권자들의 성화와 거래은행으로부터 시달리다 못해 이때부터 편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78년 그랜드호텔 경영시 대출관계로 알게 된 조흥은행 중앙지점 고준호씨를 이용, 재기를 노린 것이다.
'79.11월 고준호씨가 조흥은행 중앙지점장으로 발령받자 李씨에게는 천군을 얻은 거나 진배없었다.

이때부터 李씨는 갖은 선심을 베풀며 고 지점장에게 자금지원을 부탁했고 고 지점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李 사장이 만들어 놓은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때는 너무 늦었다.

마침내 고 지점장은 어느날 같은 지점내에 근무하는 박종기 차장을 李씨에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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