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상(金鍾相) 한국공인회계사회 부회장
요즈음 인기있는 TV드라마 중에 무인(武人)시대, 그리고 야인(野人)시대가 있다.
이전 시대에 그런 일들도 있었다해서 흥미있게 극적으로 만들어서 그렇지, 우리나라 조선시대이후의 역사는 소위 먹물 먹은 문인(文人)시대가 주류이었고 군인(武人)들이 앞장설 수 있는 기회가 적었으며, 더더욱 벼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재야(在野)에서 활동하던 일들이 정사(正史)에 등장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과거제도를 통해 배출돼, 국가 각 조직의 상층부의 벼슬을 독차지해 왔는데 수백년 동안의 그 공과는 논란이 있지만 국가사회를 이끌어 온 엘리트요, 중심세력이었던 것이다.
이 선비들의 존재가 근세이후의 역사(1910년이후)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고등문관시험, 고등고시, 그리고 사법고시, 행정고시 또 각종 사짜 붙은 자격시험으로 예전의 과거제도의 전통을 이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인재들이 정부 각 조직에서 국가발전을 위해 활약해 왔고, 또 재야 아니 각 사회 직능분야에서 변호사 등의 이름으로 지도적인 활동을 해왔던 것이다.
예전의 선비제도의 전통을 바로 잇고 있으며 가장 많이 닮은 적자(嫡子) 또는 장자(長子)로 자임하는 변호사들이 다른 사짜 직업들의 선두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도맡아 하던 시절들이 있었으나 요즈음의 분업화·전문화된 사회에서는 그 영역을 조금씩 양보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예로 최근 공인회계사·세무사들도 회계·조세에 관한 소송대리권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교적 늦게 자리잡은 세무사업계에서 변호사, 공인회계사들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것은 그쪽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나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선배 사(士)짜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그런대로 좋은 시절을 누렸던 사(士)짜들의 직업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은 근래 매년 합격자 수를 대폭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구비율로 보아 그렇다던가, 서비스시장의 개방, 그리고 국민들이 싼 비용으로… 등의 명분으로 너무나 많은 합격자들이 배출되고 있으니, 공인회계사만 해도 필자가 인연을 맺은 30여년전 60년대 중반에는 보통 30∼40여명이던 합격자가 이제 3년전부터 30배쯤 1천명으로 늘어났으니, 새 합격자가 법적으로 받아야 하는 2년동안 실무수습기관이 부족해 시위를 벌이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제 궁여지책으로 2년의 실무수습이 버거우므로 1년의 단기(속성) 실무수습으로 공인회계사의 본연의 일(事)인 '회계감사'는 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회계·세무서비스만 할 수 있는 회계사로 구분하자는 아이디어(법령 개정)도 있는데 당초 숫자를 늘려서 '투명한 회계감사'를 한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투명(透明)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제는 회계감사가 잘못(詐·邪 또는 誤)되면 그 책임이 엄중하고 가혹해서 회계법인이 망하고 그 소속 회계사는 재산도 잃는 등 전문가로서는 죽게(死)까지 되는 결과가 있을 수 있다.
몇년전 엔론사태, 우리나라의 대우, 그리고 최근 SK 등의 분식회계들이 대표적인 사례로서, 회계사가 추락사하는 등 앞으로 집단소송이 도입되면 더욱 공인회계사들이 안팎으로 곱사등이 되게 생겼는데 다른 사짜들의 형편들도 비슷하게 어렵게 돌아간다고 듣고 있다.
일반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도…"하는 시각으로 보겠지만 얼마전 어느 공공기관의 공인회계사 채용 면접시험에 유명 회계법인에 근무하던 경력 회계사들 170여명이 응시해 2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는데, 이들이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기려고 하는 것은 폭주되는 일(事·회계감사는 일년의 3분의 일이 되는 기간에 집중)과 그후의 책임문제라는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이 받는 연봉의 절반내외의 직장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면접과정에서 "일요일에 쉬고 싶어서…,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등이었다는데 요즈음 회계사들의 고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끝으로 '양(量)을 늘이면서 질(質)은 좋게'라는 것이 사회 모든 분야의 추세라면 사(士)짜들이 감수해야 하는 여건이지만, 관련 제도들을 만들고 관리·감독하는 기관들도 명분만을 집착하지 않고 실상도 면밀히 분석해, 최대한 양질(良質)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사(士)짜들을 위해 고민해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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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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