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중에 세제발전 심의위원회의에서 논의된 2000년 세제개편방향은 무엇보다도 큰 정치적 이슈가 없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의 개선과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실시 등 비교적 소란했던 문제들은 작년에 정리가 되었고 금년에는 그대로 시행하는 문제만 남아 있다. 그러나 큰 이슈는 없다고 해도 어느 해보다 알찬 세제개편 과제들이 올라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곽태원(郭泰元) 서강대 교수
여러 해 동안 전문가들에 의해서 제기되어 왔고 또 당국도 그 필요성을 인정해 왔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손대기를 미루어 왔던 과제들이 금년도의 의제에 대폭 포함된 것이다. 이러한 과제들로 대표적인 것들은 에너지관련 세제의 세율구조 조정, 조세체계의 정비 간소화, 기부금관련 세제 개선 등이다.
휘발유 경유 LPG 등은 자동차 연료로서 높은 대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율의 심한 차등으로 말미암은 과도한 가격격차와 이에 따른 왜곡된 인센티브 효과를 유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고착된 가격체계를 바꿀 때 발생하는 주요 집단간의 이해상충으로 그 시정이 어려웠고 그 비효율의 부담을 결국은 국민일반이 담당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기왕에 이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하였으므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에너지 가격체계가 확립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매우 많다. 당장의 상황 뿐 아니라 기술발전의 가능성까지도 예측하면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따라서 외국의 사례만 따를 일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이 정책은 효율을 기준으로 선택되어야 하며 형평의 문제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일이 꼬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부당이득세와 자산재평가세를 금년내로 폐지하고 일부 목적세의 본세 통합을 추진하기로 한 것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전화세도 부가가치세로 전환하면 조세체계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현저히 개선된다고 말할 수 있다.
부당이득세는 원래가 조세의 성격에서 먼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고 자산재평가제도는 이론적으로는 명분이 있는 제도이지만 현실적으로 시가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재평가를 수시로 실시하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자산 인플레이션이 현저히 진정되었고 거기다가 세법상 감가상각 내용연수가 현저히 짧아졌기 때문에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그 필요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전화세는 부가가치세화함으로써 다양한 통신 서비스간의 실질적인 세부담 차이를 해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농특세 등 목적세의 본세 통합은 별도의 대체재원대책을 반드시 전제로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어차피 전체 세입을 우선순위에 따라 나누는 것이 효율적인 예산배분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기부금관련 규정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사소하지 않은 문제다. 합리적인 기부 문화의 정착과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의 확대 뿐 아니라 불합리한 관우위의 구조도 차제에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소득 구분 없이 기부금 공제를 적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도 전향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이 밖에 조세 감면장치들 중에서 일몰시한에 이른 것들은 될 수 있는 대로 폐지함으로써 복잡하면서도 실효가 크지 않은 감면장치들을 정비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금년 개편 방향에서도 많은 신규 감면 내지는 지원제도들이 도입될 예정인데 이러한 장치들의 도입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 역설하고 싶다. 특히 벤처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세제유인은 너무 명분에 치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미 벤처 중소기업들에게는 재정지출 쪽에서 막대한 지원이 쏟아 부어지고 있다. 그리고 기왕에 있는 다양한 기업관련 조세지원은 벤처기업들에게도 적용된다. 본격적인 창업 이전단계까지 조세수단으로 벤처를 지원하려는 생각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행정과 관련해서 개인 납세자들이 쉽게 신고서를 작성하고 제출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절차를 개선하고 서식이나 관련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려는 노력은 우리 세정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