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서는 경유 등유 LPG를 비롯한 수송용 연료유와 발전 및 산업용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는 중유 등에 대한 세율인상을 통해 유가를 인상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하였다. 무분별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교통량을 축소함으로써 국민생활의 질을 근본적으로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금번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성명재(成明宰) KIPF연구위원
그동안 우리 정부는 서민부담을 경감하고 산업경쟁력을 높이자는 명목으로 저유가 정책을 견지하면서 기형적인 유가구조를 유지해 왔다. 단기적으로 이러한 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저유가 정책은 석유를 너무 쉽게 소비하는 풍조를 조장하였으며, 본래의 취지와 달리 에너지 절약적 산업구조보다는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기형적 비대를 초래하였다.
지난 10년간 전세계의 석유류 소비는 연평균 1.2%씩 증가한 반면 우리 나라의 석유류 소비는 매년 10.6%씩 증가하였다. 우리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중국도 평균소비증가율이 6.4%인 것을 볼 때 우리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석유를 많이 소비하여 왔는지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비증가율이 높다는 것 하나만으로 반드시 석유를 낭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동차 연료로 소비되는 휘발유 경유 LPG의 소비증가가 석유 소비증가를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보면 우리가 에너지를 절약하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특히 이들 석유제품은 산업생산활동과 거리가 멀어 산업생산 증대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지난 한해 동안 LPG 승합차가 9만4천대에서 24만8천대로 1백50% 증가한 것도 이러한 상황의 한 예로 들 수 있다. 석유류 절대소비량이 크게 증가하는 것과 함께 유종간 가격격차가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LPG 차량이 급증하는 등 산업왜곡 현상과 함께 에너지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휘발유를 제외하고는 절대가격 자체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유가격은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에 비해 72%에 불과하며, LPG는 69%로 그 이하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가격 측면에서 석유소비 절약을 위한 유인책이 별로 없었다고 하겠다. 둘째, 유종간 상대가격구조가 크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경유와 LPG의 가격 모두 휘발유의 89%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으며, 미국 등에서는 오히려 경유의 가격이 더 높다. 반면에 우리 나라에서는 경유가격이 휘발유의 48%, LPG는 27% 수준에 불과하여 휘발유와의 가격격차가 매우 크다. 같은 양을 소비하더라도 경유의 환경오염 비용이 휘발유의 8배 정도에 이른다는 점을 볼 때 경유를 휘발유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교통혼잡비용이나 환경오염 측면에서 LPG는 휘발유와 비슷하지만 가격격차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소비대체로 인한 수급불안정이 우려된다.
우리 나라를 제외하고는 국제적으로 LPG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가 별로 없어 우리 나라의 수요변동이 LPG 국제가격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LPG 소비의 급증은 자칫 국제가격의 급등을 초래하여 수급불균형 및 외화유출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현재 매년 2백억달러 가까운 외화를 석유수입을 위해 지출하고 있다. 더욱이 금년에는 국제유가가 천장부지로 상승하여 에너지 수입을 위해 3백억달러 또는 그 이상의 외화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어 국제수지 악화가 우려된다. 또한 그동안 우리는 외환 및 금융위기이후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에 매진하여 경제위기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은 우리 나라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였고,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는 등 경제여건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이러한 점에서도 무분별한 에너지 소비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알면서도 당장의 금전적 부담증가를 두려워하여 에너지 세제개편을 미루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에너지 세제개편은 세율을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세율 및 유가의 정상화로 보아야 하는 만큼 전향적으로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