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首邱初心). 이 말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언덕쪽으로 두고 죽는다는 것으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나타내는데, 이는 우리 인간에게도 많은 교훈과 시사(示唆)를 준다.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한 그 이름 고향산천. 조상의 영묘(塋墓:무덤)가 계시고, 자신의 태(胎)가 묻힌 땅. 고향에 대한 애정은 고향과의 거리가 멀수록 더욱 애틋하며 떠난지 오래될수록 더욱 절실한 것이 사람의 정의(情義)다.
지난 추석에 귀성하는 그 많은 사람들의 들뜨고 설레는 밝은 얼굴에서 그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고향과의 정연(情緣)을 끊고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니 이들은 혹시 건강을 잃고 마음에 희망이 없고 출행(出行)에 차가 없고, 일자리 대책이 없는 그런 궁곤(窮困)한 사람들일까?
아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고향을 더 그리워한다. 서울에 가서 잘된 사람, 고향인심을 타고 올라 국회의원이 돼 그만둔 사람 중에 그런 몰정(沒情)한 사람이 더러 있고, 또는 그 출신(出身)이 너무 미천(微賤)해서 찾아 살필만한 조상묘(祖上墓)가 없거나 아니면 이상가리(利上加利)의 돈밖에 모르는 속물이 그 유형(類型)에 속한다.
어릴적 모자(母姉)의 등에 업혀서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의 무두(撫頭:머리를 어루만짐)의 귀염을 받고 크고, 소낙비가 오는 날의 초등학교 하교길엔 한마을에 사는 상급생이 받혀주는 우산안에서 조작거리던 어린 시절. 설, 추석 등 명절날에는 동네 아무집이나 무상출입이 허용되고 점심·저녁식사 대접을 받던 즐겁고 신나는 날들.
그날에는 전국에 멀리 흩어져 사는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의(友誼)와 유대(紐帶)를 다지고 조이는 것은 인간 최대의 순정(純正)한 기쁨이자 교화(敎和)인 것이다. 필자는 가까운 곳에 고향을 두고도 자주 못가 민망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고향마을에 갔다. 버스로 20분 남짓.
마을앞 연못(連塘)속에 세채가 나란히 서 있는 수중정자(水中亭子^晩歸亭)에는 운빈화용(탐스러운 귀밑머리의 美女)에는 좀 못미치는 마을 여인들이 만좌(滿座)를 이루고, 못을 온통 뒤덮은 푸른 연잎을 헤집고 나온 연꽃은 마치 파란 구름속에서 살짝 고개를 내미는 운중선녀(雲中仙女)처럼 청순(淸純)하고 우아(優雅)하다.
성묘를 마치고 마을사람들과 주잔(酒盞)을 나누고 다시 만귀정(晩歸亭)에 와보니 광주시내에서 소풍나온 낯모른 젊은 남녀들이 정상(亭上)을 채우고 상사화(想思花) 경연(競姸:예쁨을 다툼)하는 호반(湖畔)은 젊은 남녀들이 스킨십(손 잡고)을 하고 거닐고 있으니 정자의 주인인 나는 앉을 것, 설곳을 못 찾고 그 대신 다음과 같은 풍영(諷詠:풍자한 글) 한수를 지어 수첩에 적어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향화훈(於鄕荷薰)
고향에서 나는 연꽃향기
만당연엽만개산(滿塘漣葉萬介傘)
못속에 가득한 연잎은 일만개(많은)의 우산이요
원이익청화향서(遠而益淸花香抒)
멀리서 더욱 맑은 꽃향기를 쏟아낸다
수장초적채호월(須將草笛채皓月)
풀피리 불며 밝은 달 떠오르기를 재촉하니
제열교화감제절(堤列교花堪제折)
둑(堤)위에 늘어서 있는 예쁜 꽃 눈초리로 꺾을 만하네(손으로는 못하고는)
(註)꽃을 꺾는다는 말은 세상 노생(老生)들의 Idiom(慣用句)이니 그날 그분들에게는 소이관용(笑而寬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