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기는 사후조치…세무서 직원들 "청원경찰 도입이 무리한 요구냐?"

2023.08.07 09:20:52

동화성세무서 민원실장 사건 계기로 사전보호 요청 봇물

대응 매뉴얼, 카드형 녹음기 등은 결국 사후보호에 그쳐  

 

청원경찰 배치시 신체위협·폭언 가하는 민원인 제지에 효과적

예산 문턱 넘지 못하고 번번이 무산된 '세무서 청원경찰' 도입

올해 소관세수 388조1천억원 걷는데 직원 보호 위해 100억원도 못쓰나?

 

 

지난달 발생한 동화성세무서 민원실장 사건을 접한 일선 세정가에선 직원 개개인이 악성 민원인을 응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한계론과 함께, 근본적인 방법으로 ‘청원경찰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다.

 

세무서 민원실내 청원경찰 배치를 요구하는 국세청 직원들은 노동부 산하 기관인 노동지청과 고용안정센터에서 별도 예산를 들여 공무직 형태의 경비가 상주함을 예로 들며, 세금 징수 과정에서 고강도의 민원이 발생하는 세무서는 왜 방치하고 있는지에 격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4일 동화성세무서 민원실에서 복수의 민원인을 응대하던 민원실장이 갑작스레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병원에 후송됐으나, 사건 발생 12일째인 지난 4일 현재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원실장이 쓰러질 당시 민원인과 주고받은 대화가 녹취되지 않아 악성 민원 여부를 가리지 못한 상태로, 블라인드 앱 등에서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무분별한 소문과 억측으로 당시 민원실 직원과 민원인은 물론 민원실장 가족까지 2차 피해에 내몰리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국세청은 사건 발생 당시 민원실내 CCTV 영상만으로는 폭언 등 악성 민원 여부를 판별하지 못함에 따라, 부랴부랴 전국 세무서 민원실 근무 직원들에게 카드형 녹음기를 배포하는 등 현장에서 발생한 악성 민원을 신속하게 파악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실제 민원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물론, 순환보직이 이뤄지는 국세청 인사 특성상 언제라도 민원실 근무에 투입될 수 있는 대다수 직원들 또한 국세청의 이번 녹음기 배포가 수동적인 직원 보호 조치에 그치고 있음을 지적했다.

 

서울 A세무서 직원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민원실 근무 직원에게 악성 민원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녹음기가 제공돼 다행”이라면서도 “민원인으로부터 참기 힘든 욕설을 다 들은 이후에야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한참 미흡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동화성세무서 민원실장의 경우 10여 분에 걸쳐 민원인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실신했다는 점에서 사전 예방 차원의 직원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 B세무서 직원은 “수도권 일부 세무서의 경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악성·상습 민원인이 존재한다”며, “민원실 뿐만 아니라 세원·조사 부서에도 악성 민원으로 인해 업무 자체를 볼 수 없다는 불만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강화된 내용의 민원 대응 매뉴얼과 녹음기까지 배포했으나 악성 민원인과의 사후 대응에 불과하다는 지적으로, 사전예방적인 직원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세무서 직원들의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다.

 

일선 직원들은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신체적·정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청원경찰제도’를 손에 꼽고 있음에도 예산을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와 그 관리 하에 있는 중요 시설 또는 사업장 등의 경영자가 경비를 부담할 것을 조건으로 경찰의 배치를 신청할 수 있다.

 

청원경찰법에 따르면, 청원경찰은 특정지정구역의 경비를 목적으로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른 경찰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국가 중요시설의 지정구역 방호를 위해 총기를 휴대하고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일선 세무서에 1명 이상 배치되는 방호직 공무원도 방호업무를 하지만 방호직은 일반직공무원으로 분류돼 있어 청원경찰처럼 경찰의 권한·업무·무기사용 등을 행사할 수 없는 등 청원경찰보다 악성민원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힘들다.

 

국세청 직원들은 납세저항이 큰 세목이 시행되거나 세율이 급격히 오르는 등 납세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엔 특히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종합부동산세가 첫 시행되던 당시 강남세무서에서 흉기를 소지한 납세자가 직원을 위협한 일이 발생했으며, 근래에는 세무서장 직무실을 찾은 민원인이 자해하는 소동도 있었다. 

 

7개 지방국세청과 133개 세무서·21개 지서를 운영 중인 국세청의 주된 기능이 국가재정 조달인 만큼, 세정 집행 과정에서 다양한 민원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이상 예산을 이유로 모른 체 해서는 안 된다는 자성론마저 국세청 중간관리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한편, 올해 확정된 국가 지출예산은 총 638조7천억원. 이 가운데 국세 수입은 400조5천억원으로 한해 국가 예산의 62.7%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올해 국세청 소관 세수입 목표는 388조1천억원으로, 총 지출예산 대비 60.8%, 총국세 대비 96.9%에 달한다.

 

일선 한 관리자는 “한해 국가 살림살이의 60%를 국세청 소관세수로 거둬들이고 있으나, 정작 세수를 조달하는 국세청 직원들은 신체적 위협과 폭언에 시달리고 있다”며, “민간업체라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 지 묻고 싶다. 더는 피해 직원이 나오지 않도록 청원경찰 배치를 국세청 조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청원경찰법시행령 9조에서는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청원경찰의 보수를 별표2에서 규정하고 있다. 올해 4월 개정 시행 중인 청원경찰 봉급표에 따르면, 재직기간 15년 미만인 15호봉 청원경찰의 월 급여는 281만원으로 적립 퇴직금을 합하면 1인당 연간 3천372만원이 소요된다.

 

본·지방청 8곳과 133개 세무서 및 21개 지서에 청원경찰 1명씩을 배치할 경우 54억6천여만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청원경찰별로 다른 재직기간 및 호봉을 감안하고 기관이 부담해야 할 각종 수당과 피복비·교육비 등을 합산하더라도 100억원 미만으로 추산된다.

 

국세청 한 직원은 “한해 소관 세수 388조1천억원을 걷는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100억원이라는 예산을 투입해 달라는 것이 정말 무리한 요구냐”며, “이제라도 국세청 수뇌부가 적극 나서 관계부처와 국회를 상대로 적극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윤형하 기자 windy@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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