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의 은지화 3점이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는 내년 1월6일부터 2월22일까지 ‘이중섭의 사랑, 가족’이라는 주제로 은지화와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 20여 점을 소개한다.
은지화는 1955년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이었던 아서 맥타가트가 이중섭 개인전에서 산 작품이다.
미국문화원 외교관이자 서울대 강사였던 맥타가트는 서울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 대한 전시평을 쓰기도 했다. 그는 그 그림 3점을 현대미술관에 보냈다. 그리고 근대미술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1956년 소장품으로 결정됐다. 3점 중 한 점은 일반적인 과정을 거친 위에 채색된 그림으로 더욱 특별한 느낌을 준다고 갤러리현대 측은 설명했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오산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은박지 그림이다. 이중섭은 이미지가 떠오를 때마다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은박지를 편 후 연필이나 철필 끝으로 눌러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수채나 유채를 온통 칠했다. 이것이 마르기 전 헝겊이나 손바닥으로 닦아내면 패인 선에 물감이 스며들어 선각이 나타났다. 그렇게 그린 은박지 그림은 철선 같은 독특한 효과를 나타냈다.
편지화는 6·25 동란으로 아내와 자식을 일본으로 보내고 그들에게 띄운 편지그림이다. 당시 이중섭은 우동과 간장으로 한 끼 먹던 날에도, 요행으로 두 끼 먹던 날에도 편지를 썼다. 편지의 글 귀퉁이에 그림을 곁들였고 그림으로만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나의 귀여운 태현 군. 건강하지? 학교에 갈 때에는… 좀 춥지 않니? 요전엔 엄마와 태성 군과 태현 군 셋이서 이노카시라 공원에 놀러 간 것 같구나. 연못 안에는 커다란 잉어가 많이 살고 있지? 아빠가… 학교 다닐 때…이노카시라 공원 근처에 살았기에 매일 공원 연못가를 산책하면서 커다란 잉어가 헤엄치고 다니는 모습을…보고 즐거워했단다.”
“하루라도 빨리 함께 살고 싶소.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과를 올려주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이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소중하고 멋진 당신의 모든 것을 포옹하고 있소. 당신만으로 하루가 가득하다오. 빨리 만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요.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또 만나고 싶어서 머리가 멍해져 버린다오.”
편지글 옆에는 가족이 두레상처럼 모여 단란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편지에 복숭아를 그려 나아지기를 바라고, 그리움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날이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배를 타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냈다.
전시는 5개 전시장으로 나눠 꾸민다. 유화, 드로잉·채색화, 유학시절 글을 대신해 사랑을 전한 엽서화, 가족에게 보낸 편지화, 재료비가 없어 담뱃갑 속 은지에 새긴 은지화 등으로 구성된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의 일생을 담은 기록영화를 상영한다. 이 영상은 일본에서 제작돼 지난 13일부터 일본 전역에서 상영되고 있다.
작품들은 미국 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개인 소장가에게서 빌려왔다.
전시는 박명자(71) 현대화랑 대표가 기획하고 추진했다.
조정열(47) 갤러리현대 대표는 “미국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이중섭의 은지화를 빌려오기 위해 지난 3개월간 공들였다. 사실 은지화를 대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